나 '욜로' 산다…밀레니얼 세대 3명, 지난달 통장 열어보니

창간 54주년 - 세상을 바꾸는 밀레니얼 파워

'한 달 살기' 떠나고, 월급 1/3을 취미로 '덕질'
통장이 텅장되면 어떠랴, 남들이 못하는 경험을 샀는데…

WHY - 덕후 라이프의 대중화

물건의 희소성보다 경험의 희소성 중시
"이거 해봤다" 이색 경험으로 차별화
제주 '한 달 살기' 등 여행 트렌드 주도
미식·사진 촬영·마음수련 여행자 늘어

'색다름'에 열광…취미 중개 플랫폼 성황
스킨스쿠버·성악 등 소비자에 매칭
프리랜서 웹 디자이너 김영진 씨(33)는 지난 3월 인도네시아 발리에 ‘한 달 살기’ 여행을 다녀왔다. 김씨가 발리행 장기여행을 결정한 이유는 단 하나. 오로지 자연과 호흡하면서 요가 수련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가 여행에 지출한 돈은 항공료 60만원, 숙박비 75만원, 밥값 등 기타 경비 150만원, 요가원 이용료 30만원 등을 합쳐 총 320만원가량. 한 달 반치 급여였다. 김씨는 “주변에서 ‘그렇게 살아서 언제 집을 사느냐’는 잔소리도 했지만 서울에 집 있는 사람은 많아도 한 달 휴가 내고 내 몸에 집중해 요가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는 데서 만족감이 컸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장기여행 수요밀레니얼 세대는 남들과 다른 경험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걸 해봤다’는 것으로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해외여행에서 이런 변화는 뚜렷이 감지된다. 우선 해외여행을 떠나는 밀레니얼의 수 자체가 늘었다. 지난해 해외여행을 떠난 20대는 462만 명으로 전년도(210만 명)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여행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최근 밀레니얼 사이에선 한 나라 한 도시에 정착해 사진 촬영, 맛집 탐방, 현지인 교류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는 장기여행이 인기다. 스카이스캐너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 달 살기 여행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18% 늘었다. 여행지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9월부터 제주에서 살고 있는 이현재 씨(29)는 “제주에 젊은 감성의 맛집이 많이 생겼다고 해서 미식 체험을 하기 위해 여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취미=독서·음악감상’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색다른 취미활동에 열광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취미 중개 플랫폼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회원 가운데 밀레니얼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67.8%로 압도적이었다. 취미 중개 플랫폼은 가죽공예, 스킨스쿠버, 성악 등 이색 취미활동을 가르치는 다양한 업체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장비를 갖추고 바다까지 나가야 해 ‘마니아들만의 취미’로 불렸던 서핑도 빠르게 일반화하는 추세다. 대한서핑협회에 따르면 2014년 3만~4만 명에 불과했던 국내 서핑 인구는 지난해 20만 명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경험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걸 해봤다’는 데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하는 밀레니얼을 이해하려면 이들의 성장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다른 세대에 비해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물질보다는 경험 등 무형의 가치에 더 큰 무게를 둔다”며 “이전 세대와 비교해 부동산 등 유형자산에 대한 집착이 크지 않은 반면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는 이색 경험 등에는 아낌없이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희소성’도 밀레니얼 세대의 여가활동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다. 물자가 부족하던 과거엔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우리 집에 TV, 냉장고 다 있다’는 자랑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곽 교수는 “희소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색다른 경험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밀레니얼 세대는 물건을 사용할 때도 소유보다 ‘써본다’는 경험의 측면으로 접근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공유경제를 키우는 큰손으로 부상한 이유다. 롯데멤버스가 총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카셰어링 등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를 묻는 항목에 45.3%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합리적 비용 때문’(41.2%)이라는 응답보다 오히려 많았다. 렌털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 YOLO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