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사이먼 테일러 "빌 게이츠도 차세대 원전에 투자…한국의 脫원전은 국가적 낭비"

세계적 에너지경제학자 사이먼 테일러 英 케임브리지대 교수

수십년 쌓은 산업 기반 무너질수도
韓 수년간 건설·관리 실적 없으면
앞으로 해외서 사업수주 어려워져

최근에는 차세대 중·소 원전 유망
공장서 제작, 수요처에 바로 설치
건설·송전비용 대폭 줄일수 있어

한전, 英 무어사이드 원전 따내려면
사업자 도시바와 협의하는 게 중요
문화·제도 다른 英정부도 설득해야
세계적 에너지경제학자인 사이먼 테일러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탈(脫)원자력발전 정책은 한마디로 낭비”라며 “소모적인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부담은 모두 한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이 탈원전을 하려는 이유가 궁금하다”며 “시간이 지나면 해외 원전 수주도 어려워져 산업 기반이 와해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테일러 교수는 영국 전력산업의 민영화 방안을 설계하고 30년 가까이 투자은행(IB)과 대학에 재직하며 원전과 에너지 분야를 연구했다.▶유럽 국가별로 원자력발전 전략이 완전히 다른 것 같습니다.

“독일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신규 원전 건설을 포기하고 운영 중인 원전 가동을 중지했습니다. 스위스도 후쿠시마 사고가 있은 뒤 가동 중인 원전은 추후 대체 발전소를 짓지 않는 방법으로 원자력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죠. 하지만 프랑스는 신규 원전을 건설하면서 오히려 친(親)원전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탈원전 노선을 걷고 있는 이탈리아와 덴마크는 전력이 부족해 프랑스 원전에서 나온 전기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라는 점이 큰 배경입니다. 냉전체제를 거치면서 유럽에서도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컸는데 독일이 핵으로 무장할 것이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의심을 떨쳐내야 하는 상황이었죠. 자국 정치 상황이 이런 흐름과 맞물리면서 독일이 상업용 원전을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앙겔라 메르켈 정부 초기엔 친원전으로 바꾸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반(反)원전 분위기가 커지자 탈원전으로 다시 급격하게 선회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뒤 한국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독일은 상황이 다릅니다. 한국이 탈원전을 하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수십 년에 걸쳐 원전산업을 육성했고 이제 해외에서 원전사업을 수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점이 많은 원전을 버리고 다른 에너지원을 개발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이 낭비로 인한 부담은 한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비싼 전기요금을 내면서 탈원전을 할 것인지는 그 나라 국민과 정부가 선택할 문제입니다.”▶재생에너지로 전환하면 원전을 줄여도 되는 것 아닙니까.

“초기 건설비가 많이 드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직 원자력만 한 에너지가 없습니다. 유럽에서는 1월엔 태양광이 별로 없고 바람도 안 불어요. 이런 시기에도 24시간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화석에너지에만 의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신재생에너지도 다변화하는 것처럼 원전도 여러 종류와 규모로 다양하게 건설할 수 있습니다. 환경 및 송전, 판매 비용까지 고려하면 대규모 원전보다는 차세대 중소형 원전이 유망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은 20년 넘게 원전을 짓지 않고 있는데요.“영국은 1950년대부터 줄곧 원전 선도국이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 전력산업 민영화 이후 20년 이상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 위한 산업 기반이 무너졌어요. 최근 영국 정부는 중소형 원전이나 차세대 원전 개발을 지원하면서 산업 기반을 다시 조성하려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한국의 원전 기술은 앞으로 와해될 수 있습니다. 몇 년 뒤부터는 해외 신규 원전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전력이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사업자인 도시바와 잘 협의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로 언어, 문화, 제도, 법률이 완전히 다른 영국 정부를 설득해야 합니다(도시바는 사업방식 변경을 이유로 한국전력의 무어사이드 원전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지한 상태지만, 한국 정부와 한전은 사업 참여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이 프랑스와 함께 영국 힝클리포인트C 원전을 수주했습니다.

“영국 정부 프로젝트는 모든 유능한 사업자에 열려 있습니다. 중국도 중국형 원전을 짓고 있어 문제가 없습니다. 중국 기술 수준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프랑스 사업자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강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국형 원전의 수준은 중국이 자국에 짓고 있는 대규모 원전이 건설된 후에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전이 위험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군사용 원자폭탄과 상업용 원자력 발전을 혼동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를 믿지 못하니 근거 없는 핵 공포가 확산된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국민은 대부분 정부와 시스템을 믿기 때문에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에 대한 방사능 공포가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탈원전 요구도 거세지 않습니다. 현재도 영국 국민은 원전을 선호합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화재나 폭발로 사망했지,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지나친 측면이 있어요. 대부분 정부를 믿지 않기 때문이죠. 일본도 처음에 도쿄전력이 정보를 숨기는 등 대처를 잘못해 일본 국민이 원전을 불신하게 됐습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최근 중국의 차세대 원전사업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믿을 만한 미래 에너지원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원전의 차세대 기술은 더 발전하고 있습니다.”

▶원전 초기 건설비가 너무 많이 듭니다.

“안전성 평가 과정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그 비용을 민간이 해결하기 불가능해 대부분 국가가 해결하고 있죠. 건설과 송전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장에서 제작해서 수요처에 설치하는 중·소형 원전(SMR)과 차세대 원전(AMR)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 금융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건설투자비에 대한 수익을 보장하는 동시에 전기요금을 인하해 소비자 부담도 낮추는 금융 및 보증 기법들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영국 에너지공기업의 민영화 과정에 관여했는데 민영화의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유럽연합(EU)은 탈규제화 작업을 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민영화는 필수적입니다. 정부가 소유한 에너지공기업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직원들의 반은 놀고 있을 정도로 비효율적이었죠. 이런 기업을 민영화해 경쟁을 촉진하고 경영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원가를 절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에게 저렴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에너지기업들이 민영화돼도 담합이 가능한 게 문제입니다. 영국에서도 수년간 전기요금이 계속 상승해 폭동 수준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중국 경제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통상전쟁으로 미국과 중국 모두가 피해를 볼 것입니다. 당분간은 양국의 무역분쟁이 계속되겠지만 머지않아 서로 양보해서 일정한 접점에서 합의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로 촉발된 세계질서 재편작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실패한 영국의 원전 정책

脫원전 후 전기료 폭등…20년간 건설 중단으로 해외 원전 기술에 의존

영국은 1956년 세계 최초 원자력발전소를 시작으로 30여 년간 원전 15기를 지었다. 1989년부터 전력부문을 민영화하면서 원전을 줄였다. 북해산 석유와 가스를 활용한 발전으로 원전을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1995년 사이즈웰B 원전이 영국 내 마지막 원전 건설이었다.

그러나 화력과 대체에너지만으로는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전력 생산단가가 올라가자 민영화된 영국 전력업체들은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전기요금이 폭등하자 2006년 원전 건설에 반대하던 노동당 정부가 원전 추가 건설로 정책을 전환했다. 이후 보수당으로 정권이 바뀐 뒤에도 친원전 정책은 유지됐다. 원전 건설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명분이 더해졌다. 전체 에너지원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20% 이상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에서 원전이 가장 효율적인 친환경에너지라는 인식이 확산됐지만, 다른 이유로 원전 건설은 쉽지 않았다. 20년간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산업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해외 원전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노후 원전을 대체하기 위한 3개의 신규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프랑스와 일본, 중국 기업 등에 맡겼다. 그중 하나가 한국전력이 일본 기업과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는 무어사이드 원전(뉴젠)이다.

■사이먼 테일러 교수는…

바클레이즈와 JP모간 등에서 에너지 담당 분석가로 일하면서 영국 전력산업의 민영화 프로젝트를 컨설팅하고 영국 원전의 변화 과정을 지켜봤다. 2005년 케임브리지대로 옮긴 뒤 에너지 정책과 금융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2007년 《영국 원자력산업의 민영화와 금융 붕괴》를 시작으로 《투자자들은 원전 부채를 어떻게 평가하나》(2008년), 《원전 르네상스》(2009년), 《원전과 탈규제 전력시장》(2010년), 《영국 원전의 부침》(2016년) 등의 책을 잇달아 냈다.

■약력△영국 케임브리지대 졸업
△옥스퍼드대 경제학 석사
△런던정치경제대(LSE) 경제학 박사
△레소토 중앙은행 근무
△바클레이즈은행·JP모간 유럽본부 애널리스트
△영국 에너지 민영화사업 자문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케임브리지대 최우수 강의상 수상

런던=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