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부담 커지는 脫원전…전력산업 발전 위한 '전력기금'까지 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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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로 脫원전 손실 메우겠다는 정부‘탈(脫)원전’을 둘러싼 논란이 정책의 실효성에서 비용 보전 문제로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원전 중단에 따른 손해를 국민 전기료로 조성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보전하겠다는 뜻을 굳혔기 때문이다. 야당은 이런 방침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10일 시작하는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료 3.7% 떼서 기금 조성
사용처 17개에 脫원전은 없어
정부, 시행령 고쳐 사용 계획
원전 6기 중단비용 1.3조인데
전력기금 여유자금 5000억뿐
신에너지 R&D 투자 줄어들 듯
전력기금은 소비자가 내는 전기요금의 3.7%를 떼서 만든 기금이다. 국민의 준조세로 조성된 것인 만큼 전력산업 발전을 위한 공공사업에 써야 한다. 전기사업법과 시행령은 기금 사용처 17개를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원전 등 발전소를 폐지하는 데 따른 비용 보전은 포함되지 않는다. 탈원전 비용을 전력기금으로 충당하는 데 대해 법적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과거 전력기금을 국제핵융합실험로 공동개발 사업 등에 썼을 때도 적절성 논란이 나왔으나 그때는 적어도 법이 규정한 사용 범위 안에 있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비록 탈원전 비용 보전이 기금 사용처 규정엔 없어도 기금의 취지와는 부합한다”고 설명한다. 전기사업법 48조는 ‘정부는 전력산업 발전과 기반 조성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전력기금을 설치한다’고 기금 설치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전력산업 발전을 위한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보전하는 일도 기금 설치 목적과 맞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법무법인 영진으로부터 이런 논리를 담은 법률 검토 결과도 받았다.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강도 높은 탈원전 정책이 전력산업 발전에 기여하는지부터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있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탈원전 영향으로 한국전력의 적자가 커지고 이로 인해 전기 요금 인상이 가시화하고 있다”며 “무리한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 우려가 커지는 마당에 정책 비용을 국민 전기료로 충당하는 게 정당하냐”고 지적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한울 3·4호기 등 멀쩡히 짓고 있던 원전까지 중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전력기금으로 메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절차적 정당성 문제도 제기된다. 정부는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고쳐 탈원전 비용 보전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시행령 개정은 국회로부터 동의받을 필요 없이 정부 입법만으로 처리할 수 있다. 국회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은 전력기금 사용처에 발전사업자 손실 보상을 제외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개정안의 국회 처리 전에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면 소용이 없다.기금의 본래 사업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기금의 여유 자금은 4000억~5000억원 정도다. 월성 1호기와 신한울 3·4호기, 대진 1·2호기 등 신규 원전 6기를 중단하는 데 따른 비용이 1조300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탈원전에 따른 비용을 메우려다 신에너지 연구개발 지원, 도서벽지 주민 지원 등 원래 목적했던 사업이 쪼그라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