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AI·플랫폼·군중의 물결에 올라타는 기업이 이긴다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

앤드루 맥아피, 에릭 브린욜프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456쪽│1만8000원

알파고처럼 발전속도 빠른 AI
인간 빈틈 채우며 생산성 키워

스마트폰 플랫폼 구축한 애플
시장의 90% 넘는 이익 챙겨

군중이 이끈 비트코인 열풍
기업가정신의 가능성 보여줘
Getty Images Bank
1세기 전 전기가 새로운 동력원으로 등장했다. 전기는 증기기관을 대체하는 효율적인 장치였지만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기술 중 하나기도 했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많은 미국 기업이 20세기의 진입로에서 무릎 꿇었다. 증기에서 전기로 동력원이 전환되는 과정에 발맞춰 변화하지 못해서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에서는 전기화(電氣化)가 “미국 제조업에 대량 멸종과 흡사한 위기를 야기했다”고 분석한다. 단순히 증기기관을 전동기로 바꾼 것이 아니라 생산 공정 자체를 재설계한 기업들이 전기화의 혜택을 누렸다. ‘지능적인 전기화’ 대신 전기를 조금 더 나은 동력원 정도로 생각했던 공장 소유주들은 경쟁에서 뒤처졌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들은 “돌이켜볼 때 너무나 명백한 기술발전이 펼쳐지는 동안 왜 경험이 많고 똑똑한 사람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100년 전 동력원이 바뀔 때처럼 현재의 우리는 또 다른 격동의 초기 단계에 서 있다. 저자들은 기계(머신)와 플랫폼, 군중(크라우드)을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변화의 동력으로 꼽는다.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처럼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기계의 능력, 페이스북이나 에어비앤비처럼 어떤 자산도 없이 성장을 거듭하는 신생 플랫폼 기업, 그리고 국경이나 세대를 넘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온라인 군중이다. 책은 이 세 가지 축을 기반으로 미래 비즈니스를 지배하는 힘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마음과 기계’를 다룬 1부에서는 기계,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파고든다. 기계의 발달로 편안한 생활을 향유하면서도 단순 업무를 처리하던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까지 넘보는 상황에 이르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기계가 하지 못하는 다른 능력을 키워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물질적 욕구는 기계에 맡기고 사회적 욕구를 다루는 일은 인간이 하는 식이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결합을 통해 어떻게 생산성과 가치를 높여갈 수 있을지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생산물과 플랫폼’을 언급한 부분에서는 플랫폼 구축에 성공하지 못한 예로 삼성전자를 든다. 삼성은 애플과 휴대폰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기기 판매량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2015년 세계 스마트폰 관련 이윤 91%를 플랫폼 구축에 성공한 애플이 점유했다는 통계(추정치)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모든 경제가 결국 플랫폼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전문가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는 군중의 등장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들은 다양한 의견을 갖고 분산돼 있지만 하나의 사안으로 모이면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것이 비트코인 열풍이다. 저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 새로운 화폐는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물결을 일으켰다”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개인과 단체로 이뤄진 전 세계의 군중이 상품 및 서비스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저자들은 “성공하는 기업들은 마음과 기계, 생산물과 플랫폼, 핵심 역량과 군중을 다른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는 기업”이라며 “기술이나 조직적 측면에서 현상 유지를 고집하는 기업들은 본질적으로 증기력을 고수한 기업들과 같은 선택을 하는 셈이고 그들과 동일한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한다.다행히 저자들이 내다보는 미래는 낙관적이다. 기술의 힘이 커지면서 우리가 세계를 바꿀 수 있는 능력도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질문의 방향은 바로잡아야 한다. ‘기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우리는 기술을 갖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 무엇을 목표로 삼느냐와 함께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가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거대하고 복잡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양한 기업의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돕는다. 각 장의 마지막엔 내용 요약과 더불어 실질적인 지침을 짧게 정리해 보여준다. 조직과 기업에 관련 개념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도 덧붙여놨다.

저자들이 언급하듯 이 책은 비즈니스 성공의 비결을 열거한 설명서가 아니다. 새로운 기계와 플랫폼, 군중이 만들어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안내서다. 당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증기기관은 어디에 있는지,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