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시민단체 딴지에 한숨 쉬는 의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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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 바이오헬스부 기자 freeu@hankyung.com“의료 빅데이터는 고혈압, 당뇨, 암 환자들이 각자의 특성에 맞게 병을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노동·시민단체들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봐야 하는데 무조건 반대만 하니 답답합니다.”
헬스케어 벤처기업의 A대표 말이다. 이 업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학병원 등이 보유한 700만 건 이상의 의료 데이터로 심뇌혈관 질환, 폐렴, 유방암 등의 발병 확률을 알려주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환자가 이 프로그램에 혈압 혈당 심박수 식단 운동시간 등을 입력하면 몇 년 안에 병세가 나빠지는지를 예측해 알려준다. 임상 결과 환자의 95%가 만족한다고 답했다.이 회사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5년이 넘게 걸렸다. 의료 빅데이터를 구하는 과정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 계획을 세우고 대학병원에서 연구자를 섭외한 뒤 의료기관의 연구윤리위원회에서 심사받는 복잡한 절차를 거쳤다. 자료를 얻는 데만 1억원 이상 들고 시간도 1년 이상 소요됐다. 영세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제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쉽사리 관련 제품 개발에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 10일 국회 정문 앞에서 노동·시민단체는 ‘개인 의료정보 상업화 반대’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민간이 주도하는 의료 빅데이터 사업이 기업들이 의료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의료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와 민간이 개인정보 보호를 염두에 두고 시범사업 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무조건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비식별화한 의료정보가 공개되면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까지 노출될 위험이 있고, 결국 의료제도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이들 주장은 일반 국민에게 근거 없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도 개인 의료정보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 빅데이터 규제 완화를 바라는 것은 병원의 풍부한 임상자료를 활용하면 맞춤형 의료는 물론 신약 개발 등에 활용할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의료서비스도 높일 수 있도록 서로 머리를 맞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