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투자 위축에…'나홀로 낙관론' 10개월 만에 접은 정부

'경기 회복세' 판단 버렸다

그린북서 '회복세' 표현 삭제
국내외 기관 경기하강 진단에도
정부, 회복세 판단 고집하더니
경기지표 악화에 결국 꼬리내려

경기침체 아니라지만…
민간선 'L자형 침체' 분석 나오는데
기재부는 "하강국면 전환 아니다
회복세 표현 내달 재등장할 수도"
전문가 "정책 방향·속도 재점검을"
올해 2월부터 9월까지 취업자 수 증가폭이 전년 동월 대비 10만 명대 이하에 머무는 등 고용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12일 경남 통영의 폐업한 조선소 앞을 한 근로자가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결국 ‘나홀로 경기 낙관론’을 접었다. 국내 민간 연구기관뿐만 아니라 국책 연구기관, 해외 기관까지 모두 경기 하강을 진단할 때에도 회복세 판단을 고집했으나 지속적인 경제지표 악화에 손을 들고 말았다. 기획재정부는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는 아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정부 부처 내에서도 경기 침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L’자형 장기 침체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신중론 강화되고 있는 그린북
기획재정부가 매달 발표하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은 올해 하반기 들어 지속적으로 신중론이 강화돼왔다. 그린북은 정부의 공식적인 경기 진단 보고서다. 그린북 7월호에서는 ‘불확실성 확대’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나왔다. 투자·소비 등이 조정을 받고 고용 상황이 미흡한 가운데 글로벌 통상마찰 확대, 미국 금리 인상 가속화, 국제 유가 상승 등 위험요인이 상존해 있다는 이유에서다. 8월호에서는 “생산이 조정을 받고 있다”는 표현이 새로 쓰였다. 6월 광공업 생산이 전월 대비 0.6% 감소하면서 전 산업 생산이 0.7%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 10월호에서는 작년 12월부터 올 9월까지 10개월 연속 사용했던 ‘회복세’ 표현을 뺐다.

기재부는 이미 5월호에서도 처음에는 “광공업 생산·투자가 조정을 받은 가운데 소비는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전 5개월 동안 적시했던 회복세 표현을 넣지 않았다. ‘경제전망 하향 조정’ 논란이 일자 발표 1시간여 만에 수정 보도자료를 통해 회복 흐름과 관련한 문구를 추가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스스로 경기 판단을 헷갈려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다른 기관들은 진작에 낙관론 버려

기재부 외에 다른 기관들은 일찌감치 ‘경기 회복세’ 판단을 버렸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8월까지만 해도 “경기 개선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지만 지난달에는 ‘개선 추세’라는 문구를 삭제하면서 다만 “경기가 빠르게 하락할 위험은 크지 않다”고 언급했다. 사실상 경기 전망을 ‘개선’에서 ‘하락’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달 10일 내놓은 경제동향에서는 “전반적으로 정체되고 있다”며 비관론 쪽에 더 가까운 진단을 내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국내 경기는 작년 2분기를 고점으로 시작된 전형적인 ‘경기 수축’ 국면에 있다”는 의견을 냈다. LG경제연구원도 같은달 “한국 경제가 중기적인 하향 흐름에 들어설 전망”이라는 진단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지난달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7%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9일 3.0%에서 2.8%로 낮추는 등 해외 기관들도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 동참하는 움직임이다.◆기재부, “경기 침체 아니다”지만…

기재부는 경기 침체까지는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광희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회복세라는 표현을 뺀 것은 하강국면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는 뜻”이라며 “민간 기관에서는 ‘경기 침체’라는 용어도 쓰고 있지만 기재부는 침체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고 과장은 “회복세 표현이 11월이나 12월 다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현재 경기 상황을 좀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정책 방향과 속도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시장에 부담을 키우는 정책으로 경제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정하고 규제 완화 등 전통적 성장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