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지, 6언더파 몰아쳐 '大역전극'…2년 만에 침묵 깨고 다시 날다

LPGA투어 하나은행챔피언십 16언더파 우승

마지막 날 '불꽃 버디쇼'
3타차로 찰리 헐 따돌려

전반 연속 버디로 추격 시동
12번홀 칩샷 어프로치 '마법'
결정적 위기 막고 파 세이브

에비앙 이후 준우승만 6번
"내 샷보다 스스로를 믿었다"

세계 랭킹 1위 지킨 박성현
쭈타누깐과 공동 3위 '무승부'
전인지가 14일 인천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에서 열린 LPGA투어 KEB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를 쳐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우승으로 전인지는 2016년 9월 에비앙챔피언십 이후 약 2년 만에 정상에 오르며 LPGA투어 통산 3승째를 수확했다. 전인지가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덤보’ 전인지(24·KB금융그룹)가 긴 침묵을 깨고 날아올랐다. 14일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에서 2년여 만에 통산 3승째를 신고했다.

UL대회 전승 보약… 43전44기 ‘날개’전인지는 이날 인천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파 72·6316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 4라운드를 6언더파 66타로 마쳤다. 보기는 1개만 내주고 버디 7개를 솎아냈다.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를 적어낸 전인지는 전날까지 2타 차로 앞서 있던 찰리 헐(잉글랜드·13언더파)을 3타 차로 밀어내는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상금은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

전인지는 지난주 끝난 8개국 여자골프 대항전 UL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대회 사상 처음으로 4전4승 전승을 올리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상승세를 그대로 살려냈다.

첫날 2언더파 공동 11위로 대회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의 우승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둘째날 2타를 덜어내며 순위를 공동 8위로 끌어올릴 때도 그랬다. 하지만 전인지는 3라운드에서 6타를 줄이며 보란 듯 질주를 시작했다. 마지막 날 4라운드를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4위로 시작한 뒤 이틀 연속 6언더파를 쳐 역전 우승의 좁은 문을 열었다.1번(파4)과 2번홀(파4)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시동을 건 전인지는 5번(파4), 6번홀(파5)에서 다시 연속 버디를 뽑아내 헐을 제치고 단독 선두에 올랐다. 10번홀(파4)에서 티샷이 러프에 떨어지는 바람에 보기 1개를 내줘 헐에게 공동선두를 허용했다. 결정적인 위기가 12번홀(파3)에서 찾아왔다. 칩샷 어프로치가 길게 떨어진 탓에 4m에 가까운 긴 파퍼트를 남겼다. 하지만 전인지는 웨지를 빼들어 침착하게 칩샷을 홀에 밀어넣어 파를 지켰다. 이후 전인지는 한 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고 우승까지 내달았다.

거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헐은 후반 들어 심하게 흔들렸다. 아이언샷이 홀을 위협하지 못할 정도로 들쭉날쭉했던 헐은 10번, 12번홀 보기를 범하며 2타 차로 역전을 내준 뒤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 짧은 파4홀인 15번홀(파4·275야드)에서 한 타를 만회했지만 곧바로 16번홀(파4)에서 보기를 내줘 벌어진 타수를 만회하지 못했다.

2015년 US여자오픈 우승을 발판으로 2016년 미국 투어에 진출한 전인지는 신인왕과 최저타수상(베어 트로피)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해 9월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 우승을 끝으로 25개월 동안 승수를 쌓지 못했다. 잡힐 듯했던 우승은 신기루처럼 손끝에서 빠져나갔다. 지난해 준우승만 다섯 번 했다. 올 시즌에도 준우승(킹스밀챔피언십)이 한 번 더 나왔을 뿐 우승 가뭄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다섯 번 만에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그동안 준우승 한 번, 3위 한 번에 그쳤다.전인지는 “UL 대회 우승 때처럼 많은 분이 응원해줘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챔피언조에 앞서 단독 선두로 경기를 끝낸 전인지는 함께 경기한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와 포옹할 때만 해도 환하게 웃었다. 우승이 확정된 뒤 인터뷰에서 눌러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전인지는 “우승이 점점 멀어지면서 스스로 부정적인 쪽으로 몰고 갔다. 가족과 코치 등 주변을 너무 힘들게 했다. 다시 우승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UL 대회가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주변의 격려와 기대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번엔 내 샷보다 나 자신을 진짜 믿어보자고 했고, 그게 실현됐다”고 했다.

LPGA 직행할 ‘신데렐라’ 못 나와

태국의 골프 영웅 에리야 쭈타누깐과 ‘1인자’ 경쟁을 벌여온 박성현은 12언더파 276타로 쭈타누깐과 공동 3위에 올라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하지만 세계랭킹 1위 자리는 9주째 이어가게 됐다. 박성현은 지난 8월 인디위민인테크놀로지챔피언십 우승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뒤 아슬아슬하게 그린 퀸 자리를 지켜왔다. 쭈타누깐에게 이번 대회 이전까지 0.26포인트 차이로 쫓겼다. 쭈타누깐이 준우승하고 박성현이 4위 이하로 떨어질 경우 자리가 뒤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우승하지 못하고 3위에 머물면서 순위가 그대로 유지됐다.국내 투어 선수 중에는 배선우가 공동 8위(10언더파)에 올라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올해가 마지막인 LPGA 직행 티켓을 잡은 주인공은 없었다.

하나은행챔피언십을 개최해온 하나금융그룹은 17회째인 올해를 끝으로 대회를 더 이상 열지 않는다. 대신 내년부터 국내 최고 상금을 내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코리아오픈(가칭)을 열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새 대회를 한국, 중국, 대만, 태국, 베트남, 브루나이 등 아시아 국가 투어를 아우르는 ‘아시안 LPGA 시리즈(가칭)’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구상이다.

인천=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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