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금리 딜레마…올리자니 저성장, 내리자니 자금유출

美 금리인상에 고민 커져
G20 재무회의 통화 논쟁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신흥국들이 금융 시장 안정과 경제 성장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흥국들은 자금 유출 및 급속한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자칫 금리 인상이 성장률 하락을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신흥국 시장이 미국 금리 상승과 이로 인한 달러부채 상환 부담 증가를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강(强)달러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하락하면 외화 상환 부담이 커진다.투자자들이 선진국 긴축정책에 취약한 신흥 시장을 가려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과 함께 금융 시장 혼란으로 신흥국 경제의 장기 전망을 악화시킨다는 의견이 나왔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올 들어 세 차례 기준금리를 조정해 연 2.00~2.25%까지 끌어올렸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잇따라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지난 5월부터 올 들어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50%포인트 인상했다. 현재 기준금리는 연 5.75%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가 올초부터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자 정부가 금리를 올리며 적극적인 환율 방어에 나섰다. 그럼에도 루피아화 약세 흐름을 완전히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4%에서 5.1~5.2%로 낮춰 잡았다.

필리핀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올 들어 1.5%포인트 인상해 연 4.5%까지 올렸다. 200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이 3년 내 최저 수준인 6%로 떨어졌지만 필리핀 정부로선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신흥국들로서는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재정 흑자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수바시 찬드라 가르그 인도 재무부 경제담당차관은 “투자가 필요한 신흥국들은 일부 경상수지 적자를 감당해야 하지만 해외투자자들의 부정적 시선을 무시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안드레스 벨라스코 런던정경대(LSE) 교수(전 칠레 재무장관)는 “올바른 정책을 펼치고 있는 국가도 경상수지 적자를 안고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고성장을 이루는 경로를 따라가기 매우 힘들어졌다”고 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