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북한 견문록' 경쟁

오형규 논설위원
“깔끔한 현대식 신축 빌딩과 40~50층 아파트 도로 위에는 자동차와 무궤도전차(트롤리 버스)가 시내를 누빈다.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거리를 오가는 직장인들까지! 일상의 풍경을 살펴본다.”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평양편 안내 문구다. 북한은 분명 변하고 있다. 사회주의와 400~500개에 달하는 장마당이 기묘하게 동거한다. 평양이 ‘혁명의 수도’에서 ‘욕망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주성하 《서울과 평양사이》).최근 북한을 다녀온 이들의 ‘평양 견문록’이 쏟아진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소감을 남겼다. 여기에 4선(選) 송영길 의원이 자신의 인상을 보탰다. 그는 지난주 주미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이번에 (북한에) 가보니 여명거리, 신과학자거리는 사진을 찍어봐도 홍콩 싱가포르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고층빌딩이 올라가 있었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외견상 평양은 상전벽해에 가깝다. 그러나 ‘평양=북한’으로 여기면 착시와 오류를 범하기 딱 좋다. 평양 거주 자체가 높은 출신성분과 특권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맨 먼저 북한 관람기를 남긴 작가 황석영이 그런 사례다. 1989년 남북작가회담 참석차 밀입북하고 돌아와 1993년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썼다. 특유의 입담으로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소소하게 풀어내 당시에 큰 화제를 모았다.그러나 황씨의 행적은 일본 교도통신 기자 세키가와 나쓰오가 쓴 《마지막 신의 나라 북조선》(1993)에서 신랄하게 비판받았다. 황씨가 북한에서 묘향산 주석 별장을 집필실로 제공받는 호사를 누렸고, 환대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렸다는 것이다. 세키가와는 “그러면서 《사람이 살고 있었네》 따위의 책을 쓴 자가 스스로를 ‘작가’로 자부하는 게 역겹다”고 일갈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재미언론인 진천규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는 평양 주민의 다양한 표정을 비교적 세세하게 보여줬다. 작가는 “단 한 장의 사진이나 1초의 동영상도 검열이나 제지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보여주고 싶은 평양’만 본 건 아닐까.

북한의 실상을 파악할 때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지난달 문 대통령 방북 때 10만 명의 환영인파는 새벽부터 동원됐다. 화려한 카드섹션 이면에는 수개월간 기저귀를 차면서까지 연습에 내몰린 어린 학생들의 엄청난 고통이 숨어 있다. 개인은 스스로 주인이 아니라 전체 속의 ‘픽셀’일 뿐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에 눈감고 북한을 다 안다는 듯 주장할 수 있을까.송 의원은 “북한은 ‘부러움 없이 살고 싶다. 가장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유교 사회주의적인, 어떻게 보면 가족주의적인 나라”라고 했다. 이 말을 북한 주민들이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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