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설계자가 말했다. "정부는 할 수 있는 일만 하라"고…

창간 54주년 - 한경 인터뷰

국제·거시경제 석학 이토 모토시게 도쿄대 명예교수

소득주도 성장은 경제 죽이는 길
日, 법인세 인하 등 과감한 정책
경제 괴롭히던 디플레 완전 탈출

韓경제, 20년간 나아진 것 없어
'분배냐 성장이냐' 사회마찰 격렬
경제발전 가속페달 밟기 힘들어

총수들 옥살이 日선 이해 불가
한국 청년들 재벌 비판 극단적
재벌탓 문화로는 경제성장 못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집중한 것이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가 성공한 비결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오히려 경제를 죽이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공평 분배라는 정부 능력을 넘어서는 목표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토 모토시게(伊藤元重) 도쿄대 명예교수(현 가쿠슈인대 교수)는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린다. 그는 2012년 말 아베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하자 일본 거시경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 위원으로 참여해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이토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거듭 강조했다. “일반적인 양적완화를 넘어서는 정부의 금융 및 재정 확장 정책 외에도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고 경제 주체들의 활력이 살아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만난 사람=김동욱 도쿄 특파원
이토 교수는 성장률 저하와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한국에 대해선 쓴소리를 했다. “분배와 격차해소 문제 등을 둘러싼 사회적 마찰이 워낙 격렬해 경제를 발전시킬 가속페달을 밟고 싶어도 밟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손쉬운 정치적 슬로건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최근 일본 경제의 부활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일본 경제가 침체를 거듭하던 ‘잃어버린 20년’ 시기에서 벗어났다고 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아베노믹스는 무서운 기세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업 실적 개선과 함께 고용이 늘고 임금이 오르면서 오랫동안 일본 경제를 짓눌렀던 디플레이션(경제활동이 침체되고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일본 경제가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되돌아갈 일은 없을 겁니다.”

▶일본 경제가 침체에서 탈출한 요인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사실 15년 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에도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침체에서 탈출하려는 조짐이 있었지만 2006년부터 이어진 잦은 총리 교체와 글로벌 금융위기, 동일본 대지진 등의 변수가 생기면서 기회를 놓쳤습니다. 아베노믹스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차이도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베노믹스의 어떤 점이 일본 경제의 체질을 바꿨습니까.

“우선 ‘세 개의 화살’로 불리는 금융정책, 재정정책, 성장정책을 ‘동시에’ 그리고 ‘대담하게’ 펼쳤습니다. 그중에서도 금융정책의 역할이 컸습니다. 30년 이상 세계 최고 수준에서 꿈쩍하지 않았던 법인세율을 낮춘 것이라든지 그동안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던 정책을 시행한 점들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베 총리가 안정적으로 장기간 집권하면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는 점도 행운이었습니다. 아베 총리는 매달 1~2회 열리는 경제재정자문회의에 거의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경제를 최우선시해왔습니다.”▶하지만 일본에선 경기 개선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552조8000억엔(약 554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15년간 줄어들다가 2013년 이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아베노믹스 덕에 많은 자금을 확보해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처럼 경제가 달라졌지만 체감도가 거시 지표와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은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면서 너무 화려한 메시지를 내놓은 탓도 큽니다. 국민의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나 할까요.”

▶일본의 완전고용 및 일손부족 현상이 노년층이 급증한 인구구조 때문은 아닌지요.

“인구는 중요한 문제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경제가 성장하는 데는 인구보다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중요합니다. 인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단카이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하고 있지만 아베노믹스 도입 이후 일본에선 6년째 노동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잠들어 있던 여성 노동과 60세 이상의 시니어 노동을 활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여성의 노동참가율은 미국을 웃도는 수준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일본은 앞으로 20~30년간 계속 젊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70세의 평균 걸음속도는 20년 전의 50대 수준입니다. 숫자로는 고령화됐지만 실질 측면에선 노동력의 연령이 젊어진 셈입니다.”

▶아베노믹스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정책 당사자로서 조심스러운 면이 있지만 80점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점이 모자란 부분은 ‘하고 싶었지만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한 정책’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 개의 화살 중 성장정책은 아직 효과가 목표치의 20~30%에 불과합니다. 사회보장제도나 노동제도 등 사회개혁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박차를 가하면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국은 고용지표가 악화되고 있고 경제성장률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대체로 경제개혁보다는 사회분배 쪽으로 정책의 중심이 쏠렸습니다. 반면 일본은 한국에 비해 격차가 작은 사회이고 사회적 마찰도 거의 없습니다. 이런 사회적 기반 아래서 경제성장에 가속페달을 밟는 아베노믹스를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국은 빈곤·격차 문제에 매몰돼 사회적 마찰이 매우 격렬한 사회입니다. 한국 젊은이들은 서울대나 연세대·고려대를 나와 삼성이나 현대 같은 큰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거의 대부분이 재벌을 비판하는 태도를 보일 정도로 극단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런 태도로는 경제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인의 상식으로는 대기업 총수들이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해야 하는 상황은 매우 이상하게 보입니다. 정부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가속페달을 밟고 싶어도 국내 이슈가 발목을 잡는 모습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빈부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경제 활력을 높이는 데서는 힘에 부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평가를 부탁합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리스트를 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베노믹스의 경우 금융정책, 재정정책 같은 것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소득분배를 고르게 하는 것은 정부 능력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한국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표방하며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리고 있습니다. 무리해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경제를 죽이는 일입니다. 낮은 소득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은 중소기업입니다. 중소기업이 강해지지 않으면 경제 활성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일본도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지만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인상해선 안 됩니다. 공평한 분배는 알기 쉬운 정치적 슬로건이지만 정책 당국자가 그런 구호에 얽매여선 안 됩니다.”

▶기업을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정부의 시각에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역대 정권이 경제 발전과 분배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 하고 좌우로 오락가락해왔다는 점입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양자택일해야 하는 문제로 봐서는 안 되며 기업 기 살리기와 분배정책 두 가지를 동시에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일본에서 집권 자민당은 원래 중소기업과 지방기업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당입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집권 이후 대기업 중심의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관계자들과 만나 식사도 자주 하고 골프도 쳐왔습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토 모토시게 교수는

1990년대 후반부터 日총리 경제자문 맡아

일본을 대표하는 국제경제, 거시경제 분야 석학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오부치 게이조,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의 경제자문 역을 맡았다.

2006년 처음 총리에 올랐다 1년 만에 사퇴한 쓰라린 경험이 있는 아베 신조 총리도 2007~2012년 야인으로 있을 때 이토 모토시게 교수에게 경제 분야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 재집권과 함께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4명의 민간 위원 가운데 현직 대학교수는 그가 유일하다. 법인세 인하의 경제 효과 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네 차례에 걸친 법인세율 인하를 끌어냈다. 《일본경제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라》 《거시경제학》 등 40여 권의 책을 냈다.△1951년 출생
△도쿄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가쿠슈인대 교수
△일본 종합연구개발기구(NIRA) 이사장
△부흥추진위원회 위원장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