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농협이니 농어촌상생기금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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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원 경제부 기자 van7691@hankyung.com“기금을 만들 때도 농·수협이 (출연자로) 들어가야 하느냐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은 지난 1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의 농협 국정감사에서 “농협이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돈을 내야 한다”는 지적에 이같이 말했다. 이날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은 김 회장에게 “농·수협이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돈 낸 게 별로 없다”며 “회장님이 (출연에) 앞장서 달라”고 주문했다. 김 회장은 “농협은 1년에 2000억원을 농업에 사회공헌 차원에서 내고 있는데…”라고 말을 흐린 뒤 “아무튼 더 내겠다”고 답했다.농협에 대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 요구는 농해수위 의원 사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 회장에게 “의원들이 이야기한 것에 대해 ‘무조건 내겠다’고 대답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미국 중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이익이 많은 수출 기업들이 농민이랑 함께하기 위한 기금인데, 농협은 FTA로 이득을 보는 곳이 아닌 데다 이미 농업에 공헌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에 대한 출연 요구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야·정 협의체가 2015년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설립에 합의했을 때 기금 출연 주체의 예시로 민간기업, 공기업 등과 함께 농·수협도 거론됐다. 그러나 농·수협은 어차피 농어민 조합비로 운영되는 곳인데, 농어민을 위해 기금을 걷는다는 것은 ‘오른쪽 주머니 돈을 왼쪽 주머니로 옮기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더욱이 합의에서는 ‘자발적인 기부금을 재원으로 한다’고 적시돼 있다.
농해수위는 지난 10일 농림축산식품부 국감에서도 주은기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장(부사장) 등 5대 그룹 핵심 임원을 증인으로 불러 기금 출연을 요구했다. 일부 의원은 질의 과정에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국정농단 사태에서의 기업 모금과 다르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 팔을 비튼다는 점에서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국회가 ‘자발적 기부금’이라는 기금 출연의 원칙을 잊는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의 교훈을 잊는 것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