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訪北 수락한 교황…"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문재인 대통령, 교황 55분 면담…北의 초청 의사 전달

문 대통령 "남북 평화 위해 축원해 주신 데 감사"
교황 "한국 정부 한반도 평화 노력 강력히 지지"
방북 성사 땐 한반도 비핵화·종전선언 힘 실릴 듯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바티칸 교황청 교황 서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교황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여덟 번째다. /연합뉴스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갈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요청에 망설임 없이 수락 의사를 밝혔다. 평화의 상징인 교황의 방북이 성사되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치적 합의를 뛰어넘는 강력한 ‘공증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사상 첫 교황 방북 성사되나

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통해 교황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 데 이어 역사적인 첫 방북 의사를 확인한 것은 이번 유럽 순방의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교황궁 2층 교황 서재에서 교황을 만나 김정은의 방북 초청 의사를 직접 전달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교황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여덟 번째다. 문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 직후 교황청에 특사를 파견한 바 있다.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그동안 교황께서 평창올림픽과 정상회담 때마다 남북한 평화를 위해 축원해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인사했다”고 전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냐”고 물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의 중재자인 문 대통령의 역사적인 ‘교황 북한 방문 프로젝트’가 마침내 가시권에 들어온 순간이다. 2000년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평양에 초청했으나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교황의 역사적인 첫 방북이 성사되기까지는 경호와 의전 등 절차적 문제 외에도 북한 인권 문제와 비핵화 조치 이행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 평화에 지지와 함께 적극적인 방북 의사를 밝힌 것만도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청와대는 자체 평가했다.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북 문제 외에도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르면 내년 봄 방북 전망

문 대통령은 이른 시일 안에 김정은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전달해 초청장을 교황청에 보내는 등 공식 절차를 밟도록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황이 북한 땅을 밟게 된다면 남북 정상이 공동 목표로 합의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앞당기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무엇보다 북한은 교황 방문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비핵화 의지’는 물론 정상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북한이 주민들에게 미칠 파장과 체제에 대한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대 모험을 감수하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 역시 교황의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적 지지가 확산되면 반드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로서는 이를 통해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미국에 대북제재 완화 등 ‘상응 조치’를 압박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한다. 방북 시기는 내년 초가 거론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교황이 내년 봄에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 하신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교황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라며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속도를 높이고 종전선언을 앞당기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황과의 면담 내용은 비공개가 관례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전에 바티칸과 협의를 거쳐 면담 주요 내용을 공개키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바티칸시티=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