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침투해 약효 높이는 약물전달체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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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 프런티어“대부분의 약물전달체(DDS)는 입자 크기가 보통 100㎛(1㎛는 100만분의 1m) 이상입니다. 체세포 직경이 약 10㎛여서 이런 DDS는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죠. 레모넥스의 DDS인 ‘데그라다볼’은 크기가 150~350㎚(1㎚는 10억분의 1m)로 훨씬 작습니다. 세포 안에 직접 들어가서 약물을 방출할 수 있습니다.”
원철희 레모넥스 대표 인터뷰
약물전달체 '데그라다볼' 혁신
세포보다 작은 크기로 개발
세포 안에서 직접 약물 방출
기존 제품보다 부작용 덜해
유전자 치료제 개발 가속도
약물전달체 '데그라다볼' 활용
고형암·아토피·비대흉터 등
질병 유전자 발현 억제 연구
해외에 선보이는 '데그라다볼'
中서 열린 다보스포럼서 연설
美 mRNA 헬스 콘퍼런스 참석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도
원철희 레모넥스 대표(37)는 핵심 보유 기술인 데그라다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데그라다볼은 약물을 표적에 잘 전달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약효를 최대화할 수 있다”며 “세포 안에서 약물이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하는 RNA 치료제를 만드는 데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레모넥스는 지금까지 데그라다볼과 관련해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SCI(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급 학술지에 1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외에서 약 20개의 특허를 출원 및 등록했다.과학기술 실용화에 관심 커
원 대표는 민달희 레모넥스 최고기술책임자(CTO·44)와 손잡고 2013년 레모넥스를 창업했다. 원 대표는 2004년 경희대 생명과학부를 졸업한 뒤 2007년 서울대 치의학 석사, 2010년 서울대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2012년 서울대 의대 선임연구원, 2012~2014년 서울대 의대 연구교수를 거쳤다. 지난해부터 대한나노의학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다.
원 대표는 “어릴 때부터 과학에 호기심이 많아 고교 시절엔 교내 화학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다”며 “당시 친척 어른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이를 계기로 난치병을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실천에 옮겼다”고 말했다.민 CTO는 1997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서울대 화학 석사, 2005년 미국 시카고대 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과정 중에 썼던 첫 번째 논문이 세계 최고 권위의 바이오 학술지인 ‘네이처 바이오 테크놀로지’에 실렸다. 2005~2007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전기공학 박사후연구원, 2007~2011년 KAIST 화학과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민 CTO는 “과학기술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다”며 “연구를 하며 다양한 형태의 나노입자를 개발했고 그중 하나가 데그라다볼”이라고 말했다. 화학 분야에서 실용화는 의약품 연구와 관련이 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도전정신 배운 게 창업 계기
원 대표는 “대학에 다닐 때 교수들이 벤처기업을 차리고 운영하는 것을 많이 봤다”며 “상아탑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동경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기회가 생겨 직접 창업까지 했다고 한다.
민 CTO는 “현재까지 나온 모든 유전자 치료제는 약효를 내는 유전자를 세포 내부로 침투시키는 데 바이러스를 활용한다”며 “바이러스에서 병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제거하지만 안전성은 100% 보장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안전성이 보장 안 되는 이유는 유전자를 실은 바이러스가 세포의 유전자 사이로 들어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데그라다볼은 바이러스를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세포 크기보다 작은 DDS가 기존에도 있긴 했다. 미국 제약회사 얀센의 ‘독실’이 대표적이다. 독실은 리포솜(지질로 구성된 소포체) 형태다. 국내로도 수입된다. 그런데 독실은 세포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세포막과 결합하며 안으로 약물을 쏟아붓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약물이 밖으로 새어나와 부작용이 생기기 쉬웠다. DDS 없이 약물만 세포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약물의 반감기가 12~24시간 정도로 짧았다.
최근 엑소좀(세포가 내뿜는 신호전달물질) 기반의 DDS를 연구하는 흐름도 있다. 이 DDS 역시 크기가 세포보다 작다. 아직 상용화가 안 됐다. 민 CTO는 “엑소좀 DDS는 약물 전달 효율이 떨어지고 약물 농도 조절이 잘 안 되는 단점이 있다”며 “엑소좀 안에 약물을 인위적으로 넣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약물을 담지한 엑소좀을 생산하는 형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임상 허가 신청”
레모넥스는 데그라다볼의 일종인 ‘LEM-TA201’에 대한 임상시험 허가 신청을 내년에 할 계획이다. 간암 치료제 성분인 ‘독소루비신’을 의사가 직접 데그라다볼 안에 넣어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도록 LEM-TA201을 개발한다. LEM-TA201 안에 독소루비신을 넣는 건 어렵지 않다. 의료장비를 이용해 두 물질을 한 군데 넣고 섞으면 된다. 시간도 10분밖에 안 걸린다.
독소루비신을 데그라다볼에 넣는 DDS는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임상 1~3상을 거치지 않고 3상에 해당하는 확증임상 한 번만 하면 된다. 의료기기 임상은 의약품 임상에 비해 성공 확률이 높고 기간이 짧아 상용화가 쉽다.
민 CTO는 “독소루비신을 몸 안에 그대로 넣으면 간 밖으로 빠져나가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데그라다볼 안에 넣으면 약물이 새는 걸 막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간 내부에 오래 머물면서 서서히 약효를 내는 서방형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서울대병원과 협약을 맺고 LEM-TA201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RNA 치료제 개발에 주력
가장 주력하는 분야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발현되는 것을 억제하는 ‘RNA 치료제’ 개발이다. 세포는 DNA가 보유하고 있는 유전정보에 따라 다양한 단백질을 합성한다. RNA는 이 정보를 해독하고 아미노산을 나르는 등 단백질이 합성되는 데 관여하는 고분자 화합물이다. RNA 치료제는 RNA의 작용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 또는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원 대표는 “RNA를 체내에 그대로 넣으면 분해효소에 의해 없어진다”며 “치료제가 세포 안에 들어가야 약효를 발휘할 수 있지만 분해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데그라다볼은 RNA 치료제를 세포 내부까지 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레모넥스가 가진 RNA 치료제의 파이프라인은 모두 3개다. 적응증은 각각 고형암, 아토피, 비대흉터다. 고형암 대상 파이프라인 ‘LEM-AB801M’은 유전정보의 전달에 관여하는 mRNA를, 아토피와 비대흉터를 대상으로 하는 ‘LEM-S401M’과 ‘LEM-S402M’은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siRNA를 활용한다.
LEM-TA201과 달리 다른 파이프라인은 통상적인 신약 임상 1~3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밖에 항체, 사이토카인 등을 데그라다볼 안에 넣은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이 치료제의 대상 질환은 고형암이다. 구체적으로는 전이성 흑색종과 간암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연구가 진척되는 대로 적용 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레모넥스의 파이프라인은 모두 8개다. 이 중에는 난소암과 유방암을 겨냥한 ‘LEM-OT501’도 있다. 민 CTO는 “이 파이프라인은 서울 묵정동 제일병원과 공동 연구 중”이라며 “임상 준비를 위해 기초 약효와 독성 평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네트워크도 구축
글로벌 협력관계도 구축하고 있다. 민 CTO는 최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제12회 하계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다. 그는 바이오 세션에서 발표자로 나서 데그라다볼에 대해 소개했다. 민 CTO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저널’의 존 플러머 선임편집자가 강연 진행을 맡았는데 데그라다볼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다음달에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제6회 국제 mRNA 헬스 콘퍼런스’에서 데그라다볼을 이용한 RNA 기반 항암면역백신과 유전자 치료제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성과도 점점 나오고 있다. 복수의 다국적 제약사와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대한 협업 논의를 하고 있다.
회사 직원은 11명이다. 지금까지 35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추가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이다. 오는 11월 말께 투자 유치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목표 금액은 120억원이다. 원 대표는 “2022년 상장을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를 운영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두 가지다. 환자가 항암제 부작용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싶다는 게 첫 번째다. 그리고 연구에 뜻이 있는 학생들에게 기술 실용화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두 번째다. 이를 위해 회사 직원뿐만 아니라 서울대 대학원생들과도 공동 연구를 한다.원 대표는 “바이오산업을 선도하는 다국적 기업과의 협업에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을 참여시키고 있다”며 “학생들이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강조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