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최선희 협상 지연 속사정뭘까…北美, 물밑서 이견 조율하나

뉴욕 채널 이외 비공개 루트 가동, 비핵화·상응조치 논의하는듯
북미 비핵화 협상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이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 실무협상 개최가 지연되는 양상이다.지난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당일치기로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5시간 30분' 회동함으로써 그 이전의 북미 대화 교착 기류를 일거에 돌파하고 나서, 곧바로 열릴 것으로 예상했던 비건-최선희 실무협상 관련 소식은 아직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기회가 될 때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이후 열릴 것이라고 공언한 상황에서,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비핵화-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이견 조율은 물론 접점찾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진 비건-최선희 실무협상이 가능하면 이른 시기에 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미 모두 서두르겠다는 의지 표명은 했다.폼페이오 장관은 방북 다음 날인 8일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카운터파트'라고 공개적으로 확인했고, 비건 대표는 "가능한 빨리 보자고 초청장을 보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역시 같은 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폼페이오 장관 면담 소식을 전하면서 "제2차 조미(북미)수뇌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할 데 대하여 합의하고 그와 관련한 절차적 문제들과 방법들에 대해서도 논의되었다"고 밝힘으로써 조기 실무협상 가능성을 비쳤다.

그러나 그 이후 실무협상 개최를 위한 북미 움직임은 두드러지지 않는다.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때 중국을 거쳐 러시아를 방문했던 최선희 부상은 모스크바에서 북·중·러 3자 외교차관급 회의를 열어 대북제재 완화에 공감하는 공동보도문을 유도했고, 11일 최 부상은 귀국했으나 그 이후 행적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비건 특별대표 역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물론 중국 방문을 거쳐 러시아에서 외교차관급 회담을 통해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미국의 입장을 설명한 뒤 벨기에 등 유럽을 순방 중이다.

북미 실무협상의 두 주역이라고 할 비건-최선희의 일정과 동선으로 볼 때 둘의 회동이 언제가 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이런 가운데 북미 양측이 여러 가능한 채널을 통해 물밑 접촉을 하면서 의제와 관련한 이견을 조율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건-최선희 실무협상은 말 그대로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한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 이전에 물밑 협상을 통해 의제 사전 점검과 이견 확인, 접점찾기 시도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북미 협상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북미 양측간에 이상 징후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며 "양측이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준비가 덜 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최선희 부상이 김정은-폼페이오 면담 기간 평양을 비웠던 만큼 협의 내용을 전달받아 협상 전략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미 양측이 지난번 김정은-폼페이오 만남에서 협상을 통해 서로 무엇을 주고받을지에 대한 논의는 한 것 같다"며 "이 아이템들의 교환 순서를 정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해 뉴욕채널이나 정보기관 간 비공개 채널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의제와 관련해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과 풍계리 핵실험 사찰 및 영구 폐기,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와 그에 대한 상응조치, 미국이 지속해서 요구해온 핵 목록 신고 여부 등이 북미 간에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남북정상회담 후 9월 27일 평양공동선언에서도 일부 핵시설에 대한 참관과 영구 폐기 등을 약속한 바 있다.

미국 측이 반대 급부로 종전선언 수용, 대북제재 일부 해제 등의 조처를 할 지도 논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근래 미 측에 종전선언보다는 제재해제에 더 힘을 실어 요구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엔 총회 때 북한 측 연사로 나온 리용호 외무상이 대북제재 해제를 본격적으로 요구한 이래 북한 측은 관영언론 매체를 포함해 모든 가용한 수단을 통해 총공세를 펴는 양상이다.

특히 조선중앙통신은 16일 "우리가 핵시험을 그만둔 지도, 대륙간탄도로켓 발사를 중지한 지도 퍼그나(퍽) 시일이 흘렀으면 응당 이를 걸고 조작한 제재들도 그에 맞게 사라지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고, 최선희 부상이 참여한 북중러 3국 외교차관급 회담의 공동보도문에선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3국 공조가 강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유럽 순방 계기에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대북제재 완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북미가 문서교환 등의 방식으로 협의는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며 "미국 측에서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에 대해 고민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김 교수는 "실무협상을 하면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엮은 합의를 만들어 제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양측에 다소 이견이 있는 대목은 북미 정상이 담판을 통해 해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