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브라질 채권 잔혹사…은퇴자금 넣은 투자자는 억장이 무너진다

증권사 '고리 수수료' 챙기고 투기등급 채권 팔면 '땡'

수익률 호조→증권사 판촉→판매량 급증→수익률 급락
브라질 채권 이자 年 10%지만 헤알화 환율 하락땐 수익률도 '뚝'

올들어 8월까지 19% 손실
"연금 개혁 등 정치적 불확실성
브라질 국채 추가손실 위험 커"

수수료만 챙기는 증권사
선취 수수료 3% 안팎 떼가
2011년 후 수수료 수익 4248억원

"상품 팔자마자 3% 수익 생기니, 시장상황 상관없이 경쟁적 판매"
<한경DB>
작년 말 대기업에서 퇴직한 전모씨(59)는 올해 초 H증권사의 브라질 채권 투자설명회에 다녀온 뒤 은퇴자금 중 1억원을 투자했다. “남미 최대 경제대국인 브라질이 망하지 않아 원금이 보장되고, 연 10%의 이자도 챙길 수 있다”는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의 설명에 귀가 솔깃했기 때문이다. 연 1000만원가량의 이자 수익으로 생활비의 일부를 댈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씨는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급락해 추가 손실 우려가 커지자 지난 8월 말 환매를 결정했다. 손에 쥔 원금은 8000만원뿐이었다. 증권사에 낸 수수료 300만원도 날아갔다. 브라질 채권 투자 잔액이 8월 말 기준 7조8390억원으로 급속히 불어나면서 투자금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손실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8월 말 기준으로 1조5050억원이 날아갔다. 이 중 개인 투자자 비중은 9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을 어기고 공공연히 투자 권유를 하는 증권사의 판매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브라질 채권 8조원어치 판매브라질 채권은 ‘수익률 호조→증권사 판촉 후 판매량 급증→수익률 급락’ 사이클을 반복해왔다. 첫 투자 열풍은 2014년 시작됐다. 2010년 헤알당 700원이던 헤알화 가치가 2014년 400원 중반으로 40% 가까이 떨어진 시점이었다. 국내 증권사들은 원·헤알 환율이 단기 저점을 찍고 반등하기 시작하자 △연 10%의 이자 △브라질과의 과세 협정에 따른 비과세 혜택 △헤알화 가치 상승 가능성을 내세우며 투자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듬해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가 브라질의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투자금액의 절반가량 손실이 났다.
2016년 연간 71%의 수익률이 나자 증권사들은 또다시 투자 권유를 시작했다. 브라질 채권 ‘잔혹사’의 재현이었다. 지난해 연 1.3%의 수익을 낸 데 이어 올해엔 8월 말까지 19.2%의 손실을 봤다.

브라질 채권 수익률은 헤알화 환율과 브라질 기준금리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에 연 10% 안팎인 채권 이자를 더하면 최종 수익률이 된다. 환율이 중요한 것은 현지 통화로만 브라질 채권을 매입할 수 있어서다. 연초 320원80전이었던 헤알당 원화 재정환율(달러화를 매개로 간접 계산)은 8월31일 268원40전으로 16.3% 하락했다. 브라질 채권 가격도 수익률에 영향을 준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신흥국 자금 유출 등의 여파로 10년 만기 브라질 국채 가격은 8.7% 떨어졌다. 꾸준히 내려가던 브라질 기준금리(연 6.5%)는 3월 이후 제자리걸음이다. 금리가 떨어지면 채권 가격이 상승한다.대다수 전문가는 브라질 국채가 추가 손실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이달 들어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오는 28일) 기대감에 수익률이 10%포인트 이상 반등했지만 연금 개혁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공 부채가 최대 난관인 브라질 특성상 연금 개혁을 주장하는 보수 정권이 들어설 경우 국채 가격이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연금 개혁 의지와 진행 상황에 따라 헤알화 환율의 변동성이 클 것”이라고 조언했다.

불법 투자권유 제재 필요

투자자 수익률과 상관없이 증권업계는 브라질 채권 중개로 적잖은 수익을 올렸다. 보통 증권사들은 브라질 채권 중개 과정에서 선취 수수료 3% 안팎을 뗀다. 이렇게 2011년 이후 브라질 채권 판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 올 8월 말까지 4248억원에 달했다. 삼성증권이 1040억원으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고, 미래에셋대우(982억원)와 신한금융투자(59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일각에선 수익률과 상관없이 3~4%를 떼가는 브라질 채권 판매 관행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의 프라이빗뱅커(PB)는 “상품을 팔자마자 3%의 수익이 생기다보니 시장 여건과 상관없이 경쟁적으로 지점에 추가 인센티브를 내걸고 판매실적 경쟁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