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직격탄'…공장도 농촌도 "불법체류자 안 쓰면 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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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
최저임금發 불법체류자 급증
불법체류자 단체로 일하는 강원도 농장 가보니
"임금 감당 못해" 아우성
내국인 시간당 1만원에 쓰지만
불법체류자는 절반만 줘도 돼
농촌지역부터 시장·공장까지
불법고용 알면서도 외국인 찾아
국내 불법체류자 35만명
동남아와 최저임금 격차 5배 이상
더 올랐다는 소식에 한국行 급증
불법체류 올해 40만명 달할 듯
"내국인 일자리만 더 줄어들어"

이곳에서 일한 태국인 남성 B씨(22)는 “한 달 25일,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200만원을 번다”며 “한국의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는 소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태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한국행이 열풍”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올초 브로커를 통해 한국에 와서 9개월째 일하고 있다. B씨는 “걸려서 추방될 때까지는 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최저임금 인상에 외국인 ‘韓 러시’
B씨처럼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 소식을 전해 듣고 한국행을 택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늘면서 올해만 10만 명이 넘는 불법체류자가 생겨날 전망이다.
그렇다고 불법체류자 외국인들이 최저임금을 받기는 쉽지 않다. 법적으로는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B씨가 월 2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주 60시간 넘게 일을 하기 때문이다. 주휴 수당이나 초과근무 수당 등은 엄두도 못 낸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오른 덕분에 불법체류자 임금도 덩달아 높아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실제 현장에서 만난 불법체류자들은 크게 불만이 없다고 했다. B씨는 “숙소와 식사가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월 200만원 받으면 150만원은 저축하거나 자국에 송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태국인 근로자인 C씨는 “태국은 최저임금이 낮고 오르지도 않아 일해도 한 달에 30만원 벌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태국은 방콕 기준으로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1421원 정도다. 한국에 비해 5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태국인 입국 브로커들에 따르면 이들은 15~20명 규모로 팀을 짜 전국을 돌며 작업한다. 봄·겨울에는 영남과 호남 등 남쪽 지방, 여름·가을에는 강원 지역을 중심으로 일한다고 한다.
농업 분야뿐 아니라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도 외국인 불법체류자 수요가 늘고 있다. 경기 김포시에 있는 한 프레스 공장의 대표 김모씨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외국인도 추가근로 등을 하면 250만원 가까이 줘야 한다”며 “인건비 상승이 부담돼 불법체류자를 어쩔 수 없이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징역형을 받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한 한국인 브로커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지방 식당 등 자영업자들도 설거지나 단순 노무에 필요한 불법체류자들을 찾고 있다. 설거지 보조의 경우 한국인은 시간당 8000~1만원을 줘야 하지만 불법체류자는 시간당 5000~6000원 선에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급격한 임금 상승을 견딜 수 없는 자영업자들이 자구책으로 불법체류자를 찾고 있다”며 “우물 안 개구리식 최저임금 인상이 한국인 일자리만 더욱 줄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창=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