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국민연금이 풀어야 할 '세 가지 퍼즐'

"이름만 연금, 본질 '공적부조' 확인돼야
미가입자 동의, 정부의 사과도 필요
'경사노委'로 간 논의…세대담합 가능성"

허원순 논설위원
‘이달 중’이라고 했던 정부의 국민연금 개편안 발표가 미뤄질 전망이다. 법에 정해진 재정추계는 10월까지 마쳐야 하지만, 정부가 뒤늦게 재는 게 많아서다. 중구난방으로 여러 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지급보장 방안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지급 보장’을 선언했으니 보건복지부는 어떻게든 이 점을 개편의 중심에 두려고 할 것이다.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보장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 이미 ‘불가’ 판단이 나기도 했다. 그때 법을 부결시킨 것은 국회였지만, 정부도 반대했다. “기성세대의 담합이자 미래세대 착취”라는 비판을 받는 지급보장안이 또 나온 배경은 새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다. 고령 인구를 표(票)로 본 것이고, 정부의 실패를 가리겠다는 것이며, 훗날 부담은 누가 하든 선심을 쓰고 보자는 포퓰리즘이다.그럼에도 이번에는 실현 가능성이 커졌다. 장기화하는 경기침체 속에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리기도 어려운 판에, 임기 중에는 돈이 안 드는 그럴듯한 당근책 하나쯤을 정부가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금 고갈에 대한 불안 심리도 그만큼 커졌다. ‘국민’을 붙이고 ‘연금’이라고 작명했던 국가가 계속 몰라라 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래도 국가 지급보장은 다수의 횡포다. 내는 돈과 받을 돈, 수익률이라는 세 요소에 획기적 변화가 없는 한 기성세대의 야합이 될 수 있다.

지급보장을 할 때 하더라도 최소한 세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름만 연금일 뿐 본질적으로 공적부조 사업이라는 점을 정부가 지금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진짜 연금으로, 법에 지급보장이 명시된 공무원연금과는 다른 제도다. 어물쩍 국가의 지급보장을 법제화한다면 이를 부담할 다음 세대는 동의할까. 아직 학생이거나 발언권이 적은 사회 초년생들에게 슬쩍 짐을 넘길 것인가.

미가입자와의 형평문제도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2186만 명에 달하지만 미가입자도 많다. 전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메워주는 것에 미가입자들은 동의하고 있나. 국회의 입법화를 동의절차로 본다고 해도 “다수 표와의 거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무수한 개인연금 상품까지 다 지급을 보증해줄 텐가.늦었지만 정부의 오류 인정과 사과도 필요하다. 성급한 도입, 잘못된 설계, 예측능력 부족으로 초기 수령자들은 과도하게 혜택 받게 했고, 적금처럼 호도하며 가입자 늘리기에 치중해 온 것은 정부다. 그 결과가 현재의 진퇴양난 상태다. 국가의 연속성 차원에서 어느 정부도 사죄 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실을 보면 이 모두가 한가한 주장일 수 있다. 경제가 나빠지고, 적립금도 독립적·전문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기금이 거덜 나는 시점은 계속 앞당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우격다짐으로 국민연금법이 아니라 헌법에 지급보장을 명시해도 실질은 같다. 재정 여건이 안 되면 결국 줄여서 줘야 한다. 정책 실패로 악성 인플레이션이라도 일어나면 액면금액만 대충 맞추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베네수엘라 그리스 우크라이나 같은 경우다.

국민연금 개편이라는 무겁고, 뜨겁고, 민감한 과제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넘긴 것이야말로 현 정부의 패착이 될 것이다. 경사노위는 정치적 협의체다. 연금전문가와 재정학자가 중심이 되고, 행정 관료들이 머리를 싸매어도 어려운 난제를 정치적 그룹에 넘기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책임회피 행정의 대가가 뒤따를 것이다.젊은 세대의 국민연금 가입 기피는 눈에 띌 정도다. 열심히 보험료만 내게 될 뿐, 받을 게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기 시작했다. 흔히 “국민연금을 지급 못 하는 나라는 없다”고 하지만, 약정했던 것보다 삭감한 나라가 적지 않다. 지급보장을 법에 담는 순간 정부채무가 돼 국가신인도를 깎아 내릴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경사노위로 넘긴 게 미래세대의 ‘탈(脫)한국’을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방아쇠가 될까 겁난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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