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때 아닌 경찰의 가짜뉴스 단속

이수빈 지식사회부 기자 lsb@hankyung.com
최근 아는 경찰관이 “찌라시 도는 게 있으면 보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이유를 묻자 “오늘 안에 1인당 가짜뉴스 1건을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정부의 ‘가짜뉴스 때려잡기’가 한창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달 초 각 부처에 가짜뉴스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경찰도 지난달부터 가짜뉴스를 특별단속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짜뉴스 특위’를 구성한 뒤 지난 15일 구글코리아 본사를 방문해 유튜브 콘텐츠 104건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가짜뉴스가 나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정부의 가짜뉴스 단속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누르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경찰이 적발했다는 가짜뉴스와 민주당이 삭제를 요청한 유튜브 콘텐츠가 무슨 내용인지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의혹에 불씨를 지폈다. 그러다 지난 11일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가짜뉴스의 내용이 밝혀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추진은 기습 남침을 도우려는 것이다” “북한에 쌀을 퍼줘서 쌀값이 올랐다” 등 16건 중 14건이 대통령과 정부 정책 관련 내용이었다. 여당은 통계청장 코드 인사논란, 청와대 업무추진비 부당사용 폭로,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까지도 모두 가짜뉴스라고 주장해왔다.

청와대에서 정부 비판적인 가짜뉴스만 찾아오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증거는 없다. 경찰에서 ‘과잉충성’을 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해석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공권력을 동원해 가짜뉴스를 뒤지는 것이 정당한지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한 변호사는 “원래 유언비어 날조 유포는 경범죄처벌법으로 처벌하다가 1988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며 “가짜뉴스 수사의 법적 근거가 약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자신에게 불리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가짜뉴스라고 탓한다. 하지만 미국 경찰이 가짜뉴스를 수사한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