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트럼프의 '중국 봉쇄령'과 한국의 딜레마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미국
USMCA에 '中과 FTA' 거부권 명시
한·중 FTA로 숨통 튼 통상기반 위험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
도널드 트럼프발(發) ‘중국 봉쇄령’의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고 있다. 지난 9월 말 타결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은 미국이 협정 참여국인 멕시코와 캐나다가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협상한 이 협정 32조10항에 따르면 ‘미국 멕시코 캐나다 3국 중 하나가 비(非)시장경제국과 FTA를 체결하는 경우 다른 두 국가는 3국 간 협정을 종료하고 양자 간 FTA로 대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시장경제국’은 ‘USMCA 서명 시점에 최소한 한 국가가 비시장경제국으로 규정했고 3국 중 어느 국가도 그 국가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바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난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뒤 NAFTA 개정을 위한 미국 국내 절차를 의회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공개한 협상의 주요 목표에는 이 조항이 존재하지 않았다. 올 들어 관세폭탄을 주고받는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무역흑자를 대규모로 축소하고 불법보조금을 금지해 ‘중국제조 2025’로 불리는 중국 방식의 기술산업정책을 폐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중국이 “대립이 아니라 대화로 문제를 풀자”며 시간을 끌자 트럼프는 초강경으로 국면을 전환했다. “숫자는 협상할 수 있지만 시스템은 협상대상이 아니다”는 중국의 높은 벽 앞에서 트럼프는 본격적으로 중국을 국제통상체제에서 고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한 것이다.USMCA의 비시장경제 조항은 그 시작이다. 아직 중국에 시장경제국 지위를 부여하지 않은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의 향후 무역협상에서 트럼프는 USMCA의 조항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트럼프의 협상전술에 말려들어 NAFTA 개정협상에서 배제될 뻔한 캐나다의 여론은 주권 국가의 국내 정치에 간섭하는 이런 조항에 비판적이지만, 힘의 우위에 의존하는 트럼프 통상전략의 위세 앞에선 무력함을 절감하고 있다. 바야흐로 국제통상질서는 미국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중국 편에 설 것인가 양분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의 노림수는 국제통상질서의 근간인 세계무역기구(WTO)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2001년 WTO 가입 후 중국의 무역성장세는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연상케 했다. 세계 최대 미국 시장에 다른 국가들과 같은 조건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된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고, 이젠 미국의 턱 밑까지 추격했다.

트럼프와 그의 집행자들은 중국을 WTO에 가입시킨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2001년 당시 중국은 15년 후 비시장경제국 지위가 만료된다는 양해 속에 WTO에 가입했다. 2016년 12월 15년의 유예기간이 끝났는데 미국, EU 등 주요국은 중국에 시장경제국 지위를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 중국은 이 문제를 WTO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EU는 국영기업을 앞세워 시장을 독점하고 불법보조금으로 경쟁을 왜곡하는 중국에 시장경제국 지위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다.결국 문제는 한국으로 귀착된다. 한국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일찌감치 중국에 시장경제국 지위를 인정했다. 교역 규모 1000억달러를 넘는 국가로서는 최초의 결정이었다. 한국이 누리던 대중(對中) 무역수지 흑자, 중국시장 선점,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협조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런 결정에는 중국이 지속적으로 개혁·개방하리라는 기대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심지어 최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무역보복으로 그 파장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한국은 2014년 중국과 상품 중심의 FTA를 타결하고 발효시켰다. 지난해 말부터는 서비스·투자 분야의 2단계 FTA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발 중국 봉쇄령의 사이렌이 요란한 상황에서 한국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이 쉽게 호전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숨통을 터준 통상마저 그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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