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해진 최경주 "새 출발은 날렵하고 멋진 모습으로"

체중 감량 하던 중 갑상선 종양 떼어내기도
2020년에는 시니어투어 진출 계획
"과거에 이룬 업적만 내세우는 둔한 모습으로 시작하기는 싫었다. 새출발은 날렵하고 멋진 모습으로 하고 싶었다"지난 6월 이후 필드에서 모습을 감췄던 '탱크' 최경주(48)가 몰라보게 날씬해져서 나타났다.

최경주는 오는 25일부터 나흘 동안 경남 김해 정산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리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억원)에 출전한다.

6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이후 4개월이 넘도록 그린을 떠났던 최경주의 복귀전이다.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24일 만난 최경주는 "지난 6월에 93㎏이던 몸무게가 지금은 80㎏을 살짝 밑돈다"고 밝혔다.

최경주는 메모리얼 토너먼트를 마친 직후 PGA투어에 병가를 냈다.

딱히 부상이나 병이 있어서가 아니었다."옆구리가 아팠다. 부상이 아니라 누적된 피로 때문에 몸이 버텨내지 못한 거다. 아픈 몸으로 경기를 하다 보니 스윙도 망가졌다. 거리도 나지 않았다"

최경주는 쉬면서 재정비하기로 결심했다.

최경주는 내년이 PGA투어 마지막 시즌이다.2020년에 시니어투어로 건너간다.

"PGA투어에서 한국인으로는 개척자였다. 시니어투어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려 한다. 시니어투어에서 과거의 영화를 밑천 삼아 둔한 모습으로 대충 뛰고 싶지는 않다. 날렵하게 멋진 모습으로 시니어투어에 등장하고 싶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살았다. 시니어투어는 어찌 보면 외교 무대나 다름없다. 거기서 추레한 모습으로 다녀서야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병가를 낸 그는 먼저 금식으로 군살을 빼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먹는 재미였다"는 최경주는 "몸에 좋지 않은 음식도 참 많이 먹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단백질과 채소 위주로 식단을 완전히 바꿨다.

채소와 함께 닭가슴살, 오리는 거의 매일 먹는다. 찐 고구마와 찐 감자 등 '순수 탄수화물'을 주로 섭취한다.

살을 뺀 뒤 근육으로 다시 채워 넣는 단계에서 그러나 큰 변수가 생겼다.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인 8월초 받은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종양이 나타났다.

"아프리카 우간다로 봉사 활동을 떠나기에 앞서 검사를 받았다. 우간다에서 검사 결과를 통보받았다. 처음에는 잠이 오질 않더라"

갑상선을 모두 제거하면 일상생활은 문제없어도 운동선수는 그만둬야 한다고 들었다.

최경주가 그리던 '큰 그림'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종양은 초기라서 일부만 떼어내 갑상선 기능은 유지하게 됐고 항암 치료도 필요 없어 더 몸이 축나는 일도 없었다.

"저수지에서 물을 빼면 바닥에 쌓여있던 온갖 쓰레기가 다 드러나지 않느냐. 금식, 감량으로 내 몸의 문제점이 다 드러났다. 갑상선 종양도 그중에 하나였다. 다행히 말끔하게 저수지 바닥을 청소한 셈이다"

모르고 있었지만 등도 한참 굽어 있었다.

의사와 트레이너의 도움으로 등을 거의 다 폈다.

최경주는 "단식과 감량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는 구상은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3주 전부터 클럽을 잡았고 실제 라운드는 23일 연습 라운드가 처음이라는 최경주는 "몸은 40%가량 만들어졌지만, 생각보다 샷이 잘 맞아 나간다.

비거리도 6월보다 더 늘었더라"면서 "잘하면 컷 통과도 하겠더라"며 껄껄 웃었다.
최경주는 이번 대회를 마치면 내년 2월까지 몸만들기와 샷 재건에 몰입할 계획이다.

2월에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이 PGA투어 복귀전이 될 전망이다.

최경주는 그때쯤이면 80% 이상은 완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은 PGA투어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즌이다.

"엄청난 성적을 바라지는 않는다. 내가 상금에 연연하고 당장의 성적에 아등바등할 단계는 아니지 않은가. 대회 때마다 늘 편하게 컷을 통과해 4라운드를 치는 게 목표라면 목표다"

그렇지만 승부사의 본능은 감추지 않았다.

최경주는 "그러다 보면 기회가 온다. 준비한 사람이라면 그 기회를 잡는다"고 힘줘 말했다.

"시니어투어에서는 신인왕, 상금왕 둘 다 염두에 두고 있느냐"고 묻자 최경주는 "첫해에 1승은 하지 않겠느냐"며 껄껄 웃었다. 이를 악물고 준비하고 있는 만큼 자신 있다는 태도다.

최경주가 시니어투어를 시작하는 2020년에는 도쿄 올림픽이 열린다.

최경주는 도쿄 올림픽 때도 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도쿄 올림픽뿐이 아니다.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고…프레지던츠컵도 생각해야 한다"

'40%'라는 몸 상태에서도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하는 최경주는 단순히 출전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아니다.

'호스트' 역할을 더 열심히 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뛰는 후배들에게 뭐라도 하나 더 배려해주려고 바쁘다. 대회 때마다 선수들과 간담회를 열어 애로를 듣고 해결하려고 애쓴다. 이번 대회에는 작년보다 총상금 2억5천만 원을 증액했다.

최경주의 노력에 타이틀 스폰서인 현대해상 정몽윤 회장이 화답한 결과였다.

이뿐이 아니다. 컷을 통과한 선수가 60명이 넘으면 60등 밖으로 밀린 선수는 상금이 쥐꼬리다. 이른바 '등외 상금'이 워낙 적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런 사정을 듣고 자비를 내서라도 등외 상금을 350만 원은 받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현대해상이 이 비용을 대회 운영비로 편성해줬다."

선수에게 하루 2장씩 주던 식사 쿠폰도 올해는 4장씩으로 늘렸다.

그렇지만 선수들에게 마냥 베푸는 건 아니다.

"대회 전장을 100야드 늘이고 러프를 더 길렀다. 어려운 코스에서 쳐봐야 해외에 나가서도 금방 적응한다"

최경주는 프로암 때 선수가 캐디를 동반하지 못하는 코리안투어의 관행에 한때 분통을 터트린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선수들 잘못이 크더라. 프로암에서 선수가 자기 캐디하고만 대화해서 생긴 일이더라. 손님 초대해놓고 부엌에서 아내와만 대화하는 격이다.캐디 동반 금지를 풀어주는 대신 프로암을 연습 라운드라고 여기지 말라고 따끔하게 얘기했다"
최경주는 25일 오전 11시30분 정산CC 1번홀에서 디펜딩 챔피언 황인춘(44)과 휴온스 셀러브리티 프로암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엄재웅(28)과 1라운드를 시작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