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레하케어'를 주목하라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라인강변에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는 슈만과 하이네의 도시다. 슈만은 클라라와 어렵사리 결혼에 골인한 뒤 이곳의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부임해 생활했다. ‘로렐라이’라는 시를 지은 하이네는 이 동네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인이자 언론인이기도 했던 하이네의 생가와 슈만의 집은 지척에 있다.

이 도시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단어는 메세(전시회)다. 코엑스의 약 7배에 이르는 25만2214㎡의 전시면적을 갖춘 뒤셀도르프전시장에선 세계 최대 의료기기전시회 메디카, 유통산업전시회 유로숍, 고무·플라스틱전시회 K, 포장전시회 인터팩 등 국제전시회가 끊이지 않는다.수많은 전시회 속에서 한국인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전시회가 있다. ‘레하케어(국제재활 및 실버제품전시회)’다. 레하케어는 ‘rehabilitation(재활)’과 ‘care(돌봄)’에서 따온 말이다. 장애인과 고령자를 위한 재활기기전시회다.

장애인 위한 첨단기기 경연장

대개 장애인을 위한 제품이라면 휠체어나 단순한 운동기기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 9월 말 열린 이 전시회에는 42개국 967개사가 고급자동차, 전동휠체어, 재활로봇, 정보통신기기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동과 재활, 정보 접근을 쉽게 해줄 수 있는 첨단기기들이다.예컨대 벤츠 BMW 폭스바겐은 고급 자동차를 개조해 장애인이 휠체어를 쉽게 싣고 운전할 수 있는 차량을 전시했다. 재활로봇도 여러 업체가 출품했다. 호코마는 다리 마비 환자가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로봇을 시연했다. F1의 황제로 불리는 마이클 슈마허가 스키를 타다가 부상당한 뒤 재활을 위해 사용하는 로봇이 바로 이 회사 제품이다. 다양한 전동식 휠체어도 등장했다.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이메일 등 문자를 점자로 바꿔주는 제품도 선보였다.

미래 먹거리를 고민 중인 중소기업은 이 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고령자와 장애인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에만 중증장애인이 780만 명에 이른다. 유럽연합(EU)의 중증장애인은 총 4000만 명이 넘는다.

재활기기, 中企 새로운 먹거리이 분야를 눈여겨보는 곳이 일본 중소기업들이다. 도쿄 오타구에는 선반 밀링 프레스 금형 등 임가공 업종의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지내면서 이곳에 있던 7000여 개의 중소기업은 반토막으로 줄었다. 대기업의 해외 이전, 경기 침체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대기업 주문에 의존해선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이 지역 중소기업 100곳이 모여 공동으로 ‘나만의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걸자’고 다짐했다. 주된 분야는 재활기기를 비롯한 의료기기다.

국내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은 일본보다 더 어렵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상당수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 국내 일감은 줄고 있다. 중소기업 간 출혈경쟁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의 가동률 하락이 ‘경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현상’으로 고착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중소기업의 선택지는 결국 몇 가지로 좁혀진다. 대기업을 따라 해외로 이전하든지, 나만의 제품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후자를 택한다면 눈여겨봐야 할 분야 중 하나가 레하케어산업이다. 전통 제조업체들이 정보통신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힘을 합친다면 이 분야에서 블루오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과 연구소도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기업에 힘을 보탤 필요가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