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의료기기 부품 국산화 안되는 까닭

임유 바이오헬스부 기자 freeu@hankyung.com
“국산 의료기기의 제품력이 뛰어난데도 후진적인 허가제도 때문에 해외 제품을 쓰는 게 유리한 상황입니다. 하루빨리 제도를 바꿔 국내 업체가 내수 판매로 체력을 비축한 뒤 해외로 나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의료영상기기 허가제도가 의료기기 부품의 국산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 업계에서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료기기법 3조 2항과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2조의 별표1에 따른 등급 분류 및 지정에 관한 기준에 의해 튜브, 제너레이터, 콜리메이터 등 의료기기 주요 부품을 기준으로 허가하는 게 아니라 완제품 기준으로 품목을 허가한다. 부품 자체는 의료기기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문제는 완성품 업체 및 의료기관이 이미 허가받은 완성품의 부품 일부를 교체할 때마다 변경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는 데 있다. 변경 허가에 드는 비용은 최대 2000만원, 기간은 두세 달이 걸린다. 국내 의료기관에 설치된 엑스레이 상당수는 GE헬스케어, 필립스, 지멘스 등 다국적사 제품이다. 이 때문에 국내 의료기관은 번거로운 변경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기 위해 해외에서 해당 부품을 수입해 쓰고 있다. 품질이 좋고 값싼 국산 부품이 설 자리가 없는 이유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좋은 튜브를 개발해도 완성품 업체 및 의료기관에 기기 변경 허가를 받으라고 설득해야 하다 보니 영업이 쉽지 않다”며 “자동차, 반도체같이 부품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놓은 셈”이라고 했다.

미국과 유럽은 엑스레이의 주요 부품을 의료기기로 규정하고 있다. 허가받은 부품을 교체할 경우에는 별도의 허가가 필요 없다. 다만 기기의 성능과 안전성 검사는 제조업체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기적으로 이뤄진다. 규격에 맞는 부품으로 교체하면 작동에 문제가 없어 미국 유럽 등에서 까다로운 변경 허가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식약처는 민간협의체를 구성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업계는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는지 지켜보자는 반응이다. 환자 안전을 지키면서 산업도 키울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