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 카슈끄지 살해 배후설 생방송으로 직접 부인

무함마드 왕세자 "카슈끄지 살해, 악랄한 범죄…터키와 협조"
미래투자이니셔티브 행사서 "5년안에 전혀 다른 사우디로 개혁" 주장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리바아 왕세자는 24일(현지시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직접 완강하게 부인했다.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날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 경제회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에서 약 40분간 진행된 패널토의에 참석, "카슈끄지 살해 사건은 악랄한 범죄로 모든 사우디인과 인류에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애석해 하면서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카슈끄지 살해의 배후라는 세간의 의혹을 전 세계에 생중계된 국제 행사에서 육성으로 완강히 부인한 것이다.

카슈끄지가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2일 사망한 뒤 이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받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공개 석상에서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그간 이 사건과 관련한 무함마드 왕세자의 입장은 그와 통화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우디 외무장관이 무관하다고 간접으로 전했을 뿐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건 발생 이튿날인 이달 3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을 나간 뒤 몇 분 뒤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가 그가 총영사관을 나가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되려 총영사관 안에서 살해됐다는 정황만 터키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사우디가 속수무책으로 궁지에 몰렸다.결국 20일 이스탄불에 급파된 사우디 정보요원이 몸싸움 중에 우발적으로 카슈끄지를 숨지게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무함마드 왕세자와는 선을 분명히 그어 사태를 봉합하려 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의 기획 암살 배후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믿었던 미국마저 등을 돌리는 낌새가 보이자 이날 행사를 이용해 직접 부인했다.
이 패널토의의 사회를 맡은 바셈 아와달라 요르단 전 재무장관은 사전에 약속한 듯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첫 질문으로 주제와는 전혀 관련 없는 카슈끄지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이 행사가 경제 분야 행사고, 이 사건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위기에 몰아넣은 민감한 사안인 만큼 묵시적으로 외면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오히려 공세적으로 대응한 셈이다.

사우디 왕실에서도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여긴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는 진상을 밝히는 모든 법적 절차를 진행 중이고, 범죄를 저지른 배신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터키 당국과 (수사) 결과를 내기 위해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며 "정의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많은 이가 이번 사건을 악용해 사우디와 터키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데 살만 폐하와 나 왕세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있는 한 양국간 불화는 없다"고 말했고, 이에 청중은 박수를 보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연일 이번 살해가 사우디 정부의 발표와 달리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면서 진상을 규명해 범인들을 터키 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사우디를 압박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 행사에 참석하기 직전 로이터 통신은 터키 소식통을 인용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절차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고려할 때 사건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쥔 터키 정부와 사우디 왕실 사이에 모종의 '물밑 거래'가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온다.

카슈끄지 살해 배후설을 적극적으로 해명한 뒤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개혁 드라이브를 부각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앞으로 5년 안에 사우디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라며 "석유에만 의존하지 않고 경제를 다변화하는 개혁을 쉴 새 없이 추진하면 중동이 새로운 유럽이 되리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맞춰 웃음을 지으며 당당한 걸음걸이로 행사장인 리츠칼튼 호텔 대연회장에 등장했다.

카슈끄지 사건을 언급할 때는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와 가까운 살민 빈 하마드 바레인 왕세자와 사드 알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패널로 동석했다.참석자들은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그를 스마트폰으로 앞다퉈 촬영했고, 그가 입장하는 순간 행사 공식 트위터의 생방송 중계엔 평소보다 10배인 1만여명이 동시 접속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