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투자, 부진한 소비…"올해 2.7% 성장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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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도 0%대 성장한국 경제 성장률이 2.7%(한국은행의 올해 전망치)를 밑돈 적은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0년 이후 네 번이다. 2차 오일쇼크 때인 1980년(-1.7%),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직후인 1998년(-5.5%),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0.7%), 유럽 재정위기가 정점에 달한 2012년(2.3%) 등이다.
3분기 0.6% 성장 그쳐…정부 목표 年 2.9% 물건너가
예상 뛰어넘은 '투자 쇼크'
건설투자 6.4%·설비투자 4.7%↓
20년 만에 2분기 연속 마이너스
고용 악화→소비 침체로 이어져
경고 쏟아내는 전문가
"최악 땐 성장률 年2.5~2.6% 우려
저성장 기조 고착화 가능성
경제 전반 구조적인 개혁 시급"
올해가 다섯 번째가 될 전망이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속보치)은 전 분기보다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두 분기 연속 0%대 성장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연간 성장률이 2.5~2.7% 선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경제위기 때는 글로벌 경제 전체가 휘청였지만 올해 성장률 둔화 원인은 국내에 있다. 사상 최대 수출과 경상수지 흑자 행진에도 불구하고 소비 부진, ‘투자 쇼크’가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기업들의 투자 축소가 고용 부진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가계소득과 민간 소비까지 줄이는 ‘역(逆)소득주도성장’이 고착화된다는 지적이 나온다.◆성장률 2.7%도 불투명
올해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성장률이 0.6%에 그침에 따라 정부가 목표로 내세운 연간 2.9% 성장은 물 건너가게 됐다. 연 2.9% 성장을 달성하려면 4분기 최소한 1.57% 성장해야 하는데 최근 악화되는 투자 소비 등 거시 지표를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한은은 이미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낮췄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정부가 특별소비세와 유류세를 인하하는 등 조세 지출과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 같은 움직임이 다행히 소비진작으로 이어진다면 2.7%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외변수 악화가 추가로 불거지거나 투자 침체가 가속화하면 올해 성장률이 2.5~2.6%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투자 감소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심각하고, 정부 지출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를 감안하면 2.7% 달성조차 단언하기 힘들다”고 했다. 올해 2.7% 성장하려면 4분기 성장률은 0.82%를 웃돌아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 투자 쇼크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국내외 경제전문기관 대부분이 내년 성장률을 2.5~2.6%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 침체부터 돌려놓지 못하면 저성장에서 결코 벗어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2, 3분기에 0.6%씩 성장하는 동안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지식재산생산물투자의 총합을 의미하는 총고정자본형성은 성장률을 각각 0.9%포인트, 1.4%포인트 깎아먹었다. 투자만 증가했다면 분기별로 1% 이상씩 성장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투자가 이처럼 두 분기에 걸쳐 성장률을 끌어내린 건 외환위기로 대규모 인력 감축과 산업 구조조정이 이뤄진 1998년 1분기(-4.9%포인트), 2분기(-2.0%포인트) 후 처음이다.
투자 침체는 고용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건설현장이다. 지난해 31만 명의 신규 취업자 중 건설 분야 취업자는 12만 명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는 건설투자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신규 취업자 수는 10만 명 밑으로 뚝 떨어졌다. 이는 소비 침체로 이어졌다. 주원 실장은 “2, 3분기에 정부 소비가 늘어났지만 민간 소비는 여전히 침체 국면”이라며 “투자 악화가 고용 침체를 야기하고,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2분기 연속 0%대 성장은 사실상 성장이 멈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정부가 단기적인 재정 투입에만 의존하지 말고 경제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고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봉/서민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