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구속심사 6시간 혈투…"靑 손발 부족해 도왔을 뿐"

검찰, PPT 동원 30개 범죄사실 추궁…"죄 무거워 구속 필요"
林 "잘못은 했지만 처벌감 아니다…검찰이 직권남용죄 남용"
구속 여부 늦은 밤 결정…양승태 등 '윗선' 수사 분수령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임종헌(59)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6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검찰과 6시간에 걸친 '혈투'를 벌였다.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이날 밤이나 27일 새벽 결정된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임 전 차장의 구속 필요성을 심리했다.

검찰의 영장 청구서가 230쪽 안팎으로 방대한 만큼 심사는 점심을 훌쩍 넘긴 오후 4시 20분께까지 이어졌다.식사를 위해 약 20분간 휴정한 것을 빼고는 심리가 멈춤 없이 진행됐다.

검찰과 임 전 차장은 심사 내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30개 안팎의 혐의를 ▲ 청와대와 관련한 범죄사실 ▲ 국회의원과 관련한 범죄사실 ▲ 법관사찰 등 법원 내부에 대한 범죄사실 ▲ 공보관실 운영비를 유용한 이른바 '비자금 의혹'으로 나눠 임 전 차장의 구속 필요성을 주장했다.임 전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에서 나온 행정처 내부 문건,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일선 판사 등과 주고받은 이메일, 임 전 차장의 지시 취지가 담긴 다른 판사의 수첩 등 각종 증거물을 PPT 슬라이드로 띄우며 "임 전 차장의 혐의가 무거운 만큼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전 차장 측은 검찰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를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이는 사법행정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해 내부 징계·탄핵감은 될 수 있지만 직권남용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일은 아니다"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임 전 차장이 박근혜 청와대와 공모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지연시키는 데 관여한 혐의를 추궁하는 대목에선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 등을 언급하다 분위기가 격앙되며 검사가 '울컥'하는 장면도 연출된 것으로 전해졌다.임 전 차장 측은 "검찰이 재판의 구조를 몰라서 그렇다. 외교부 등을 만나서 의견을 듣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징용 피해자들도 만났느냐. 판결을 뒤집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방안을 청와대와 논의한 사실을 피해자들도 알았느냐"고 반박했다.
임 전 차장 측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송 서류를 대필해주고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죄와 '박근혜 가면' 처벌 등 청와대의 법리검토를 해준 혐의에 대해 "청와대에 손발이 없다고 해 도와줬다. 부장판사 출신인 법무비서관이 누구에게 부탁하겠느냐"고 항변했다.

국회의원의 수사·재판을 도운 의혹에는 "민원을 들어주려고 노력한 것일 뿐이다", 예산을 전용해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에는 "기획재정부도 알면서 예산을 내줬다"는 취지로 변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 휘하 심의관들이나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에게 부적절한 지시를 한 혐의에 대해서는 "해당 판사의 직무 범위 내에 있는 일"이라거나 "심의관들에게 복종 의무가 있으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임 전 차장 측은 일선 재판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인정하면서도 "판단은 결과적으로 해당 판사들이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관여한 혐의에 대해서는 "형사수석부장과 교감했지 재판장에게 직접 얘기한 적은 없다.

재판장이 형사수석의 말을 듣고 판결을 썼다면 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 전 차장은 최후진술에서 '불구속 수사 원칙'이 명시된 형사소송법을 언급하며 영장을 기각해달라고 호소했다.

2006년 권성 당시 헌법재판관이 박지원 현 민주평화당 의원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직권남용죄가 정권교체기에 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소수의견을 낸 사실을 들어 "이 사건은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남용한 사건"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차장을 역임한 임 전 차장은 법관사찰과 재판거래, 검찰·헌법재판소 기밀유출 등 법원 자체조사와 검찰 수사로 드러난 의혹의 대부분에 실무 책임자로 깊숙이 연루돼 있다.

징용소송·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송 등을 둘러싼 '재판거래' 의혹이 핵심 혐의로 꼽힌다.

법조계에선 임 전 차장의 영장 발부 여부가 향후 수사 흐름을 좌우할 기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 전직 최고위급 법관을 임 전 차장 범죄혐의의 공범으로 지목한 만큼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검찰 수사는 곧바로 윗선을 향할 전망이다.

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찰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하다.다만, 법원 역시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국회가 추진하는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구성 논의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어 발부 여부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