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전국 시·군·구에 법무담당관 두면 지자체도 청년변호사도 '윈윈'"

"사시도 변협회장도 처음엔 낙마
'두 번째는 될 것' 스스로 믿었죠"

회장대학은 물론 중학 입학 때도 재수
서울대 재학시절 시위 전력에…행시·사시 합쳐 면접만 네번 봐

세무사법 개정법률안 반대 위해
변협회장이 최초로 삭발하기도

故 김규동 시인이 그의 부친
"힘들 때마다 아버지 詩 꺼내 읽어"

2005년 北인권백서 만드는 데 앞장
"국군포로 300명 데려오는 게 목표"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그는 ‘재수(再修)인생’이라고 했다. 한번에 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대학은 물론이고 중학교 입학부터 재수를 해야 했다. 행정고시 필기시험에 2차까지 붙었으나 면접에서 미끄러졌다. 행시는 면접에서 두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결국 최종 탈락했다. 사법시험도 1차와 2차에서 합격자 명단에 올랐으나 또다시 면접에서 쓴맛을 봤다. 군사정권에서 대학을 다니며 입바른 소리를 한 전력이 발목을 잡았다. 갈 곳이 없어 미국행을 택했는데 역시나, 장학금을 타는 데도 재수를 했다. 해상법 분야 최고 권위자로, 2만50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대한변호사협회를 이끄는 김현 회장 얘기다.

◆뭘 해도 ‘재수’…내 인생은 실패의 연속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던 지난 23일 저녁 서울 서초동에 있는 초원복집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술을 거하게 마신 다음날이면 늘 찾는다는 단골집이다. 김 회장은 여기에 오면 뭐든 풀리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숙취 때문에 괴로운 속도 풀리고, 복잡한 머리도 정리되고요.”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실패사(史)를 풀어냈다. 굳이 뭔가를 보태거나 덜어내지 않고 복국처럼 담백하게 말했다.

김 회장의 재수인생은 중학교 입학부터 시작됐다. 공부를 꽤 했던 터라 실망이 컸다. 중학교에 떨어지고 다른 초등학교에 6학년으로 편입했다. 그는 원래 그래도 되는 것으로 알았지만 아니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내일은 장학사가 오니 등교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편법으로 이곳에 있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속상하던지요.”

고시는 면접만 네 번을 봐야 했다. 행시 두 번, 사시 두 번이다. 그는 시위 전력이 문제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재수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서 ‘데모’를 했다. 그에겐 “데모했느냐”고 묻는 면접관 앞에서 적당히 둘러대는 ‘센스’가 없었다. ‘친구 등에 떠밀려 어쩔 수 없었고 원래는 투철한 애국심을 품고 있었으며…’ 라는 식의 ‘모범답안’ 대신 당당히 “그렇다”고 했다.“첫 번째 사시 면접에서 떨어지고 미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SK장학금으로 갔는데 SK장학금도 다른 곳에서 떨어지고 두 번째로 도전해 받게 됐습니다. 하하하. 사시는 은사이신 송상현 서울대 법대 교수님이 보증을 서준 덕에 1983년 겨우 합격했습니다.” 김 회장은 공직이 물 건너갔다고 봤다. 행시와 사시 면접만 세 번을 떨어졌으니 당연한 결론이었다. 깔끔하게 공직을 포기했더니 해상법 전문 변호사로서 길이 보였다.

먹음직스럽게 노릇노릇 튀겨진 복튀김이 나왔다. 두툼하게 튀겨낸 복살이 묵직하게 잡혔다. 바삭한 튀김옷과 달리 속은 촉촉해 ‘반전매력’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바삭한 튀김엔 이 집의 비법이 담긴 듯했다.

대한변협 회장도 ‘물’을 한 번 먹고서야 당선됐다. 떨어졌다는 얘기를 하도 들었더니 ‘그럼 그렇지’ 당연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복국물을 한 사발 들이켜며 잠시 숨을 골랐다. “변협에 와서는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김 회장 취임 이후 변호사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세무사 행정사 노무사 등 다른 직군과의 직역갈등이 불거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자동 부여하는 조항을 폐지하는 세무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국회 통과를 반대하며 삭발을 하기도 했다. 변협 회장이 삭발식을 단행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해마다 1600명의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놓고 로스쿨과 갈등도 빚었다. 정권 교체 과정에서 검찰도 법원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실향민 시인’ 아버지의 영향…북한인권에 큰 관심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지만 북한의 주체사상을 따르는 주사파나 사회주의 사상에 빠지진 않았다고 했다. 지금도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그는 아버지 영향이 컸다고 했다. 부친 고(故) 김규동 시인은 6·25전쟁이 벌어질지 모르고 1948년 고향 함경북도를 떠나 서울로 내려왔다. 부친은 고 김기림 시인을 스승으로 모셔 3년만 공부한 뒤 돌아가겠다고 노모(老母)와 약속했다. 노모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김 회장의 아버지는 38선을 두고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를 쓰다 2011년 유명을 달리했다. 김 회장은 “실향민은 반공주의자가 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그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아버지의 시를 꺼내 읽었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보면/ 보이리/ 길이’(김규동 ‘당부’). 김 회장은 아버지 얘기를 하다가 먹고 있던 복무침을 슬며시 내려놨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주름 사이로 묻어났다.

다시 북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2005년 변협의 북한인권 소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당시 천기흥 변협 회장이 저를 부릅디다. 북한인권백서를 펴내려고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는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던 때여서 북한인권을 언급하는 걸 꺼리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탈북민 100명 이상을 만나 인터뷰하고 기록으로 남겼어요. 처음에는 ‘누가 뭐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오기로 시작했는데 백서가 나오는 것을 보니 참 뿌듯했습니다.” 김 회장은 북한 해외 식당 여종업원의 탈북 문제를 놓고도 “여종업원들을 북한에 돌려보내면 고문 받아 죽는다”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북한인권단체 물망초를 후원하고 국군포로송환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북한에 국군 포로가 300명 정도 남아 있는데 그 사람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게 개인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북한에 가볼 기회는 아직 없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혹시 함께 갈 수 있을까 했는데 안 불러주더라고요. 아마 북한인권을 이야기해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시 합격할 때 보증을 서준 송상현 교수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 “송 교수님과 해상법 원론을 같이 썼어요. 송 교수님과 제가 해상법 외국박사 1, 2호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교수를 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변호사가 너무 재미있으니 몇 년만 해보겠다고 한 게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학계에 몸을 담지는 못했지만 제자는 많다. 어림잡아 240여 명이다. 사법연수원 외래교수를 3년 동안 하면서다. 그는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밥이랑 술을 많이 사줬다”며 “그 덕분에 저를 따르는 제자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 선거에 나갈 때마다 제자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더라”며 고마워했다. 그는 내년 2월 회장 임기가 끝나면 어떤 식으로든 학생들을 가르칠 생각이다.

줄줄이 쏟아지는 그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자 지켜보던 식당 종업원이 한마디 했다. “어휴, 복국물 다 식겠어요. 드시면서 말씀하세요~.” 김 회장이 멋쩍게 웃으며 복국을 연신 들이켰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가장 잘한 일”

제자들 이야기는 청년 변호사에 대한 걱정으로 옮겨갔다. “지금 법률서비스시장은 1년에 1000명 정도 변호사를 소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1600명씩 쏟아져 나오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하고도 힘들어하는 후배 변호사가 많아 속상합니다.”

그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맡을 때 준법지원인(사내변호사)제도 도입을 주도했다. 미국 로펌에서 근무한 경험이 반영됐다. “10년 전에는 300여 명에 불과하던 사내변호사가 현재 수천 명에 이릅니다. 지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변호사를 법무담당관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8개월 동안 국회를 매일같이 찾아다녔고 관련 내용을 포함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어요.” 김 회장은 법무담당관이 생기면 변호사들이 전문성을 발휘해 정부와 지자체에 적합한 조례를 잘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변호사들의 일자리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임기 중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찾은 변협 회장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200명 넘는 국회의원을 만나 변협의 뜻을 전했다. 김 회장은 “취임하고 나서 12건의 법안이 발의되도록 유도했다”며 “이 가운데 제조물책임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교수모임’의 대표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 등에게 개인정보 유출 우려 없이 피해와 관련한 배상금을 공탁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데도 공을 들여왔고 자신의 임기 내 통과를 전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온 복죽에는 복의 향이 진하게 뭍어났다. 참기름 냄새가 덮어버린 여느 복죽과는 사뭇 달랐다.

자리가 끝나갈 무렵 법조계 최대 현안인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과 검찰 수사에 대해 물었다. 그는 “법원이 관련자들의 압수영장과 구속영장을 무리하게 기각한다기보다 검찰이 오히려 무리하게 청구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라며 “어찌됐든 수사를 가급적 빨리 매듭짓고 내년부터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약력

△1956년 서울 출생
△1976년 서울대 법대 입학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 2차 합격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1984년 미국 코넬대 해상법학 석사
△1990년 미국 워싱턴대 해상법학 박사
△1999년 법무법인 세창 설립
△2007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2009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2017년 제49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취임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에 대한 지도·감독, 법률사무 개선 등을 목적으로 1952년 각 지방변호사회가 연합해 조직한 단체다. 법무부 장관의 인가를 받은 공법인으로 법에 따라 국내 모든 변호사가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돼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법률구조사업, 변호사 연수교육, 정부정책 감시 등을 주요 활동으로 한다. 비리를 저지르거나 품위를 손상시킨 변호사에게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영업정지 또는 제명 처분 등을 내릴 수 있다. 협회장은 회원들의 투표로 선출되며 임기는 2년이다. 연임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특검과 대법관, 헌법재판관, 언론중재위원 등에 대한 추천권이 있다. 2018년 10월26일 기준 등록 회원 수는 2만5421명이다.
■김현 회장의 단골집 초원복집
30년 전통의 육수를 자랑하는 복 요리 전문점

초원복집은 서울 서초동에 있는 복 요리 전문점이다. 지하철 2호선 교대역과 서초역 사이, 법원과 검찰청 건물 건너편 골목에 있다. 시원한 국물로 유명해 과음 후 쓰린 속을 달래는 법조인들로 점심 저녁이 붐비는 곳이다.

이곳 최성례 사장의 언니가 경북 포항시 법원·검찰청 앞에서 복집을 운영하던 것이 유명해져 2000년 동생인 최 사장이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개업했다. 언니 때부터 30년의 노하우가 담긴 깔끔한 육수가 특징이다. 자체 개발한 양념장을 바른 복양념구이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로 독특한 식감을 자랑한다. 얇고 쫄깃한 복사시미는 접시에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 나와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다는 평이다. 점심에만 먹을 수 있는 초원정식(3만5000원)이 ‘가성비’ 좋은 코스로 꼽힌다. 더불어 참복가와, 고니맑은국, 복튀김, 복초밥 등으로 구성된 1인당 5만5000~12만원 사이의 다양한 코스 요리를 제공한다. 참복 사시미 코스는 10만~15만원. 그 외 복찜 5만~7만원, 복튀김 3만~7만원, 복양념구이 7만원 등이다.

고윤상/신연수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