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완성차업계…車산업 살릴 특단책 SOS

엔진 꺼지는 한국 車산업

내달 정부에 정책건의서 제출
내수진작·부품사 자금수혈 요청

"세제 지원 늘리고 환경규제 속도 조절해야"
완성차업계가 위기에 빠진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정책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기로 했다.

국내 완성차업체 연합회인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지난 25일 현대자동차가 충격적인 3분기 실적을 발표한 뒤 업계에서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회원사 의견을 모아 이르면 다음달 초 산업통상자원부에 자동차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건의서를 낼 계획”이라고 28일 말했다. 자동차산업협회는 부품사 단체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등과 연대해 자동차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건의서를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이미 3조원 규모의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이번 정책건의서에는 △세제 지원을 비롯한 내수진작책 △환경규제 도입 시기 조절 △중소형 부품사 자금 지원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근로시간 단축(주 52시간 근로제)과 최저임금 인상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보완책도 요구할 계획이다.

완성차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정부에 정책 건의서를 낸 적은 거의 없다. 특히 미국의 ‘관세폭탄 우려’ 등 특정 사안에 대한 건의서가 아닌 산업 전반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달라는 건의서를 내는 건 사상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는 뜻이다.업계 관계자는 “개별소비세 인하 등 내수진작 대책이 나와 있지만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며 “유례없는 위기 상황인 만큼 폭넓은 세제 지원과 노후 자동차 교체 지원 확대 등 가능한 대안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성차업계에서는 고질적인 고임금·저효율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자금 지원과 내수진작 등으로 당장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겠지만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위기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자동차업계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완성차 업체 및 대형 부품회사 근로자의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생산성은 경쟁회사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이 구조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대책도 결국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이후 일부 부품사가 연구개발(R&D)센터를 해외로 옮기고 있고, 다수 부품사는 당장 내년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등 정부의 노동정책도 업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

정부의 움직임이 너무 늦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의 판매량이 크게 줄어든 건 지난해 2분기 일이다. 경영실적이 악화된 시점도 작년 4분기부터다. 2, 3차 부품사들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은 올초부터 이어졌고, 지난 7월에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현대차 1차 협력사인 리한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개별소비세 인하와 자동차 부품업계에 우대 보증 1조원 제공 등이 전부였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중소 부품사 대부분은 간신히 버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금 사정이 안 좋다”며 “대책이 마련되더라도 업계가 이를 체감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부가 발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