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법관 배제한 재판'이 국민 뜻?

신연수 지식사회부 기자 sys@hankyung.com
“국민의 요구는 아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처럼 법관이 아닌 사람들로 재판부를 만들라는 겁니다. 우리가 제출한 법안은 그 정도는 아닌데….”(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심리할 ‘특별재판부’ 설치를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표 의원은 “전·현직 판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90%를 기각한 법원에 관례대로 재판을 맡기는 것이 맞느냐”며 “‘사법 불신’ 상황에서 국회에 맡길 것은 맡겨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을 위해 구성한 반민특위는 판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재판을 맡겼는 데, 기존 판사들 중 추천을 받아 대법원장이 특별재판부를 임명하는 여당 안은 국민 요구보다 낮은 것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지 않냐는 얘기다.그러나 이 같은 표 의원의 발언은 특별재판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 자체로 위헌적이다. 국민 누구나 법관에게 재판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7조와 정반대되기 때문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 아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본권마저 침해할 우려가 있다. 정당이나 특정 단체 추천을 받은 ‘아마추어’에게 재판받고 싶다는 게 과연 국민의 요구인지 의심스럽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수사를 받은 판사들에게 재판을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며 특별재판부 설치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법원에 접수되는 모든 사건은 전자 시스템을 통해 담당 재판부에 자동 배당되며, 현행법으로도 이미 검사와 변호인 등이 불공정 우려가 있는 재판부에 대해 제척·기피·회피 등을 신청할 수 있다는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답변에 대해선 “법원 스스로 잘할 수 있을지 믿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무너진 사법 신뢰를 회복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철저한 책임 규명이 필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헌법정신에 바탕을 둔 사법부의 독립을 흔드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정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판사에게 사건이 배당되면 재배당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기존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은 국회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특별재판부 도입이 이미 정쟁 수단이 돼 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