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와보니 혼자만 생존"…강제징용 피해 할아버지 오열

이춘식씨 "혼자 있어 슬프다"…故김규수씨 부인 "판결 조금만 일찍 났더라면"
"같이 이렇게 살아서 봤더라면 마음이 안 아픈데…오늘은 나 혼자라 내가 눈물 나고 슬프고 그래요."30일 오후 13년 만에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는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대법정을 나왔다.

휠체어에 탔지만, 자신을 향해 터지는 수십 개의 카메라를 향해 오른손으로 경례하거나 꾸벅 머리를 숙이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소감을 묻자 이내 비애감이 되살아난 듯 눈물을 흘렸다.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재판을 오늘 와보니까 혼자 있어서 슬프고 초조하다.

울고 싶고 마음이 아프다.

같이 했었으면…"이라며 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이 사건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 김세은 변호사는 "이씨가 다른 원고가 다 돌아가신 사실을 오늘 이 자리에서 알게 됐다.

6월 (다른 원고) 김규수씨가 돌아가셨을 때도 (충격을 받을까 봐) 말을 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924년생인 이씨는 17세이던 1941년 강제징용돼 구 일본제철의 가마이시 제철소에 중노동을 했으나 임금을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해방 이후 찾아간 제철소는 폭격으로 폐허가 된 상태였다.

자포자기하던 2005년 그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권리가 소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3명과 함께 소송을 냈다.

그러나 4번의 재판 후 재상고심의 확정판결이 5년가량 미뤄지면서 함께 일본 전범 기업과 싸웠던 동료 피해자들은 하나둘 곁을 떠났다.

고(故) 김규수씨의 부인인 최정호(85)씨는 "조금만 일찍 이런 판결이 났으면 가시기 전에 이런 좋은 소식을 맞았을 텐데 마음이 아프다"라며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씨는 향후 계획을 묻는 취재진에게 "너무 기쁘고 슬퍼서 집에 가서 생각해보고 말하겠다"고 했다.

자리를 옮기는 그에게 17세 전성현 양이 다가와 자신이 만든 '강제징용 배지'를 팔아 모은 1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날 대법원에는 NHK,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사 10여곳의 취재진이 오전부터 도착해 취재 경쟁을 벌였다.김명수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 기업 패소 판결을 내릴 때는 기자실에 앉은 일본 기자들에게서 '아'하는 탄식이 낮게 터져 나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