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진웅텐트, 美서 '매트리스 강자'로 부활하다

경영탐구

13년 만에 금의환향하는 지누스

13년 전 초라한 퇴장
1979년 설립한 '진웅'이 전신
80~90년대 텐트로 글로벌 호령
외환위기 등 잇단 악재 터지며
2005년 코스피 상장폐지

이윤재 회장의 권토중래
매트리스 '롤팩 기술' 개발
돌돌 말아 택배 배송 '돌풍'
2014년 아마존 입점 '승승장구'
북미 온라인 매트리스 1위

내달 다시 한국시장 공략
'지누스' 브랜드 달고
20만~30만원대 매트리스 판매
작년 매출 6000억…1년새 76%↑
내년 국내 증시 재상장 추진
진웅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진웅텐트’로 한때 세계 텐트 시장의 35%를 점유했다. 2000년 진웅에서 지누스로 사명을 바꾼 이윤재 회장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표지모델로 나오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초청강연을 하기도 했다. 중국에 법인을 설립한 한국 최초 기업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2000년대 초까지의 일이다. 외환위기 이후 이 회장과 진웅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유동성 위기, 중국의 저가 공세 등이 겹쳤다.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누스는 2005년 상장폐지와 함께 국내 무대에서 퇴장했다. 잊혀진 기업 진웅이 지누스란 이름을 달고 국내 시장으로 돌아온다. 주력 품목은 텐트가 아니라 매트리스다. ‘북미 온라인 매트리스 시장 1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내 시장에 복귀하는 것이다.
‘매트리스 인 어 박스’ 시장 개척자지누스는 다음달 초 ‘지누스(ZINUS)’라는 브랜드를 달고 국내 매트리스 시장에서 정식으로 판매를 시작한다. 북미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1500여 가지 메모리 폼 매트리스와 침대 프레임 중 75가지만 선별해 판매할 계획이다. 내년 국내 증시 재상장에 한발 앞서 상품 판매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지누스는 국내에서는 잊혀졌지만 미국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매트리스 브랜드다. 지난해 미국 아마존 매트리스 카테고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 5개 중 4개가 지누스 제품이었다.

13년 만의 화려한 귀환이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 회장은 오래전 텐트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외환위기로 유동성 문제를 겪은 뒤 이 생각은 굳어졌다. 신사업을 찾아 나섰다. 1999년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광통신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한때 ‘변신에 성공한 기업’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하지만 수익이 나지 않았다. 신사업은 돈이 되지 않고, 기존 텐트 사업은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렸다.이 회장은 다른 사업을 찾아냈다. 매트리스 사업이었다. 이미 생산하고 있는 텐트 밑에 깔리는 매트리스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 메모리 폼 매트리스를 돌돌 말아 프레임과 함께 작은 박스 안에 넣어 쉽게 배송할 수 있는 ‘롤팩 기술’도 개발했다. 상장폐지 직전인 2004년 북미 매트리스 시장에 진출했다. 이듬해부터 지누스는 미국 시장에 올인했다. 과거 진웅의 전성기를 열었던 거래처들이 대부분 미국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10여 년을 버텨낸 힘

미국에서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10년은 ‘버티기’에 집중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납품을 하거나 월마트 등 오프라인 시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며 근근이 생존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2014년 지누스는 부활의 전기를 마련했다. 미국 아마존 입점에 성공했다. 업계와 소비자들은 새로운 모델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매트리스를 압축해 택배로 배송하는 모델’을 온라인 가구 시장의 성장과 맞물린 ‘혁신’으로 받아들였다. ‘매트리스는 운반비가 많이 든다’는 개념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구매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지누스가 만들어낸 ‘매트리스 인 어 박스’ 시장의 성장세를 눈여겨본 캐스퍼 등 다른 후발업체들도 생겨났다. 현재 북미 가구 시장에서 온라인 매트리스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3%. 이 시장 1위는 지누스다.‘착한 가격’도 인기 요인이다. 아마존에서 지누스의 그린티 메모리 폼 매트리스 가격은 30만원 수준이다. 지누스의 지난해 매출은 2016년에 비해 76.4% 증가한 6027억원을 기록했다.

한국 시장도 변하고 있다

이 회장은 미국을 주무대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법인은 한국에 그대로 뒀다. 한국 기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재상장도 국내에서 한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개인적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애착이 크다”며 “기업공개(IPO)를 미국이 아니라 한국 시장에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시장성이다. 국내 시장이 스프링 매트리스 일변도에서 벗어나고 있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봤다. 메모리 폼 매트리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0%대로 올라왔다. 템퍼 등 해외 유명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시장을 공략 중이다.지누스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매트리스를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크기와 디자인으로 변형해 내놓을 계획이다. 미국 아마존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를 판매채널로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제품 가격 역시 미국과 차이가 없는 20만~30만원대로 정해 저가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