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감장서 또 말 바꾼 韓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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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헌형 정치부 기자 hhh@hankyung.com“중앙은행 총재가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꿔도 됩니까.”
지난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을 두고 채권시장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의 내달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는 의원들 지적에 “경제 하방 압력이 커 실물경기 흐름 등을 보고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금리 인상에 따른 부작용) 우려엔 늘 유념하고 정부와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 총재 발언 여파로 기준금리 향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7%포인트 넘게 급락(채권 가격 급등)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장은 “시장에선 이 총재 말을 ‘연내 금리 동결’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이 총재는 지난 22일 열린 기재위 국감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금융 불안 위험이 커져 경계심을 갖고 통화정책을 펼 시점이 왔다”고 답했다. 달아오른 부동산시장을 식히기 위해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는 “(그간) 금리 인상 필요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온 것 같다”는 지적에도 “네”라고 답해 ‘통화 긴축’에 한 번 더 무게를 실었다. 그랬던 그가 1주일 만에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방침이 돌변한 듯 발언했다.
한은은 하반기 들어 시장에 수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선 지난 7월 이후 3회(7·8·10월) 연속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왔다. 상당수 전문가는 과거 금통위 회의에서 소수의견이 나온 뒤 3개월 이내 금리가 조정된 것에 미뤄 이번에도 11월엔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지난 29일 나온 이 총재 발언은 이런 예상을 허무하게 무너뜨렸다.
문제는 중앙은행의 이런 말 바꾸기가 적지 않은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시장 참가자들의 투자 손실은 물론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이에 따른 통화정책 효과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김중수 전 총재는 여러 번 금리 인상을 언급하다 갑자기 금리를 내려 ‘양치기 한은’이란 오명을 얻었다. 이 총재의 한은도 그때와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