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느리지만 다르게'…현대百면세점 "체험존 늘려 2년내 매출 1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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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百면세점 11월 1일 개장현대백화점그룹은 2016년 말 면세점 진출 기회를 잡았다. 롯데 신세계 등과 면세점 신규 특허를 취득했다. ‘면세점이 황금알을 낳는다’던 시기다.
면세점 특허 취득 2년 만에 삼성동 무역센터점에 개장
"늦은 만큼 제대로 만들자"
알렉산더 맥퀸 등 브랜드 420여개
강남 유명지 소개 '트래블북' 제작
"따이궁 리베이트 관행 최소화"
안착하면 판 키우는 경영스타일
한섬 인수후 SK네트웍스로 확대
가구·아울렛 사업도 '같은 전략'
국내 안착하면 해외 공항 입점
부푼 꿈이 ‘악몽’으로 바뀌는 데 채 석 달이 안 걸렸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시작된 탓이다. 면세점의 ‘큰손’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이 뚝 끊겼다. 현대백화점은 정부에 “개점 시한을 1년 연기하겠다”고 한 뒤 면세점 사업을 재검토하기도 했다. 기존 사업자인 롯데 신세계와 달리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은 관련 보고를 받고 “길게 보고 가자”며 연내 개점을 결정했다. 정 회장의 주문은 딱 하나였다. “남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해봅시다.”◆단독 브랜드 입점·뷰티 체험공간도
현대백화점이 1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점 8~10층에 면세점을 연다. 특허 취득 후 약 2년 만이다. 당시 함께 특허를 취득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신세계면세점 강남점 등은 이미 영업 중이다. ‘늦깎이’로 면세점업계에 데뷔한 만큼 ‘차별화’에 초점을 맞췄다.
입점 브랜드부터 다르게 했다. 국내 면세점 처음으로 명품 ‘알렉산더 맥퀸’을 입점시켰다. 국내외에서 스니커즈 돌풍을 일으킨 브랜드다. 국내 패션 브랜드 중에선 ‘SJYP’가 처음 현대백화점면세점에 들어갔다. 폴란드 색조 화장품 ‘잉글롯’, 두피케어 브랜드 ‘올리파스’ 등도 국내 면세점에 매장을 열기는 처음이다. 대한홍삼진흥공사와의 협업 브랜드 ‘홍선생’ 단독 상품도 선보인다.직장인이 많은 상권 특성을 감안해 ‘남성존’을 마련한 것도 다르다. 여성 브랜드 매장 위주에서 벗어났다. 휴고보스 몽블랑 제냐 등을 배치했다. 총 420여 개 브랜드가 입점했다. 보테가베네타 프라다 몽클레르 등의 명품 매장도 곧 문을 연다.
뷰티 매장에 ‘체험존’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오휘 후 숨37 등의 브랜드 매장에선 맘껏 제품을 써볼 수 있다. 스위스 스킨케어 브랜드 라프레리 매장에는 스파룸까지 있다. 슈에무라 랑콤 등 로레알그룹 브랜드는 메이크업 스튜디오를 뒀다. 국내 중소기업 뷰티 브랜드 40여 개를 넣은 ‘K뷰티 팝업존’도 운영한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유커, 보따리상(따이궁) 등을 잡기 위해 리베이트를 주는 관행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황해연 현대백화점면세점 대표는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 신규 면세점들이 했던 것처럼 무리하게 고율의 송객 수수료를 주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내년 매출 목표는 6700억원, 2020년은 1조원을 제시했다.현대백화점은 상권을 키우기 위해 강남 유명 관광지 150여 곳을 소개하고 할인 쿠폰을 모아놓은 ‘트래블북 강남’을 제작했다. 강남의 숨은 명소를 발굴해 온라인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알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최근 중국 최대 여행 커뮤니티 ‘마펑워’, 소셜미디어 유명인 왕훙 기획사 ‘레드인 왕홍왕’ 등과 업무협약도 맺었다.◆패션·인테리어 등으로 확장
이번 면세점 진출을 계기로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도 주목받고 있다.현대백화점그룹은 그동안 ‘신규 사업 진출→안착→확장’이란 경로를 늘 밟았다. 한 번에 크게 시작하기보다는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갖추고, 가능성이 보이면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패션 사업은 2012년 한섬 인수로 발을 담근 뒤 사업이 잘되자 작년 3월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추가로 사들였다. 두 번의 인수합병(M&A)으로 국내 패션업계 ‘빅4’로 도약했다. 리빙·인테리어 사업도 그랬다. 2012년 리바트 인수로 가구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매출이 계속 늘자 작년 미국 최대 홈퍼니싱 기업 윌리엄스소노마 국내 독점 판권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건자재 기업 한화L&C까지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주력인 유통 분야에서도 이 경로는 똑같았다. 아울렛 사업이 대표적이다. 현대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 등 수도권에서 다섯 곳의 아울렛을 우선 냈다. 사업이 안착하자 지방으로 진출했다. 지난 9월 대구에 도심형 아울렛을 열었다. 2020년에는 대전에도 아울렛을 열 예정이다. 면세점 또한 시내점이 안착하면 인천공항에도 추가 출점할 계획이다. 해외 공항에도 면세점을 내기로 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