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년 타이어만 만들던 미쉐린…'디지털 옷' 입고 서비스社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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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신 서두르는 전통기업프랑스 타이어 제조업체 미쉐린이 트럭업체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처음 내놓은 건 2000년이었다. 매달 약간의 수수료를 받는 조건으로 타이어를 관리해주는 모델이었다. “타이어만 팔아선 성장에 한계가 있다”며 타이어 관련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였다. 반응은 싸늘했다. 이 정도 서비스에 지갑을 여는 트럭업체는 찾기 힘들었다. 미쉐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비스로서의 타이어(tire as a service)’란 콘셉트는 그대로 유지했다. 대신 여기에 디지털을 입혔다.
타이어·엔진에 디지털센서 부착
트럭에 타이어교체 정보 등 제공
"미쉐린의 모든것 디지털화할 것"
항공기 엔진 제조 英롤스로이스
진동·압력 등 각종 데이터 분석
엔진 교체 시기·결함 등 정보
항공사에 유료 서비스해 대박
타이어와 엔진에 자그마한 센서를 부착했다. 이를 통해 트럭별 연료 소비량, 타이어 압력, 속도, 위치 등의 정보를 수집한 뒤 트럭업체에 타이어 교체 시기, 운전습관 개선사항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2013년 시작했다. 타이어 교체 주기가 15% 늘어나고, 100㎞당 2.5L의 연료가 절약된다는 소식에 차량 수십만 대가 회원으로 등록했다. 새로운 사업모델이 성공하자 미쉐린은 이런 선언을 했다. “우리는 더 이상 타이어 제조업체가 아니다. 디지털 서비스업체다.”◆디지털로 새로 태어난 미쉐린
20여 년 전만 해도 미쉐린과 디지털이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역사(1889년 설립)로 보나 사업 영역으로 보나 미쉐린은 전통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미쉐린 경영진은 미래를 다르게 봤다. 디지털이 세상을 바꿀 것이며, 이 흐름을 타지 못한 기업은 업종에 관계없이 도태된다고 생각했다. 디지털에 맞게 시스템을 하나둘씩 바꿔나갔다. 공장 직원들에게 디지털 시계를 지급해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을 알려준 것이 대표적이다. 실수가 줄어들면서 품질이 좋아졌다.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생산성도 향상됐다.디지털 관련 사업도 확대했다. 운전자 안전 관련 솔루션업체인 넥스트랙과 브라질의 트럭 관리업체 사스카를 인수한 데 이어 타이어 및 휠체어 관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아페리아테크놀로지와 스마트드라이브 지분도 사들였다. 중국의 차량공유업체 루리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에도 투자했다. 디지털 관련 사업을 키우는 인큐베이팅센터를 미쉐린 내부에 마련했다. 올 들어선 컨테이너 등 선박용 화물에 추적장치를 달아 실시간으로 위치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쉐린그룹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플로랑 미네고 파트너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결국엔 미쉐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혁신 나선 전통기업들
영국의 항공기 엔진 제조업체 롤스로이스도 미쉐린과 비슷한 전략을 통해 성장했다. 롤스로이스는 엔진과 추진 시스템에 부착한 수백 개의 센서로 진동 압력 온도 속도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한 뒤 엔진 결함 및 교체 시기를 분석해 항공사에 유료로 제공하는 ‘토털케어’ 서비스를 하고 있다. 기체 결함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고 연료 사용량도 최적화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항공사들이 마다할 리 없었다. 토털케어를 통해 롤스로이스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엔진 판매 수익과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
182년 역사의 프랑스 에너지 관리업체 슈나이더일렉트릭은 2009년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관리 플랫폼 ‘에코 스트럭처’를 앞세워 업계 강자로 우뚝 섰다. IoT의 개념조차 모호하던 시절에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시스코 IBM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와 손잡고 신개념 디지털 시스템을 개발한 덕분이었다. 제품 개발에서 시장 테스트까지 걸리는 시간을 3년에서 8개월로 단축시켰다. 전력·배전 관련 건설비도 절감해준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세계 100여 개국 48만 개 빌딩과 데이터센터, 공장 등이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크리스텔 헤이드만 슈나이더일렉트릭 대표는 “디지털은 어디에나 있다”며 “우리는 에너지를 더 잘 사용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핵심 요소로 이것을 활용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혁신은 이전의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이 혁명은 ‘우리 인류 자체’를 바꿀 것이다. 리스크를 생각하기보다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 2016년 ‘교보문고 초청 대담회’에서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