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푸치니가 완성한 '기다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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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다 돼서야 인정받았던 푸치니요즘은 소위 ‘먹방’에 이어 낚시가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받는 소재가 된 것 같다. 필자도 낚시를 좋아해서 낚시하는 모습이 방영되면 관심을 집중한다. 낚시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인데 방송을 보다 보면 물고기를 잡는 순간보다 오히려 잡지 못하고 기다리는 모습을 더 오래 보게 된다.
목표 정하고 매진하면 성공하는 게 순리
이경재 <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
물고기를 낚는 일은 미끼를 끼운 낚싯대를 드리우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다 보면 긴장감을 놓치기 일쑤다. 꼭 그럴 때 입질이 오고 낚아채는 시점을 잃어 물고기를 놓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물고기를 걸었을 때도 줄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물고기의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물 밖으로 녀석을 끌어낼 수 있다.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채비를 잘 하는 것 외에도 기다림의 시간을 온전히 수행해야 한다.올해로 탄생 160주년을 맞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도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후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이다. 10대 시절 근처 도시에서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한다는 소식을 들은 푸치니는 친구들과 함께 장장 20㎞를 걸어가 공연을 본다. 이 공연을 본 소년 푸치니는 인생의 목표를 오페라 작곡가로 정하고 음악에 매진한다.
하지만 이전의 천재 작곡가들과는 달리 푸치니는 마흔이 다 돼서야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았다. 시골 루카 출신인 이 젊은 음악도는 그저 다른 학생들과 다름없이 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자신의 음악 실력을 알아주는 사람도 더러 만났지만 결실을 맺을 시점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 시절 푸치니의 인생은 낚싯줄 꼬이듯 얽히는 듯했다. 가난한 고학생에게도 사랑은 찾아왔지만 갖은 염문 속에 결혼한 아내 엘비라와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읜 푸치니는 데뷔 작품으로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나 싶었는데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복잡한 결혼생활 속에 남동생의 비명횡사 소식까지 들어야 했다. 두 번째로 내놓은 작품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푸치니는 가난과의 끝없는 전쟁에 시달렸는데 한밤중에 친 피아노 때문에 셋방에서 쫓겨날 뻔했던 것은 애교 정도로 볼 수 있다.음악적으로도 함께 고학했던 친구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이뤄낸 대성공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주변 환경과 음악적인 일에 관해서도 제대로 풀리는 게 없었다. 그러나 푸치니는 음악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3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통해 다음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마농 레스코’는 그를 오페라 작곡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자신을 포함해 5명의 대본가를 바꿀 만큼 초조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 ‘팔스타프’가 초연된다는 사실 또한 푸치니를 불안하게 했을 것이다.
두 번째 작품을 집필한 뒤 8년이 지나 그는 38년 인생 처음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때까지 꾸준히 작품에 몰두하며 음악이라는 낚싯줄을 팽팽하게 잡고 있던 푸치니에게 찾아온 큰 성공은 준비와 기다림의 행복한 결과였다. 무엇을 원하든 목표를 놓치지 않고 조금만 더 준비하며 기다리면 누구에게나 행복한 결과가 찾아오는 것이 순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