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발굴한 13세 그룹 '보이스토리' 대박…JYP 현지화 전략 통했다

한류 3.0 시대

새로운 도전 나선 K팝
中서 뽑아 韓서 훈련…中서 데뷔
텐센트 손잡고 수익도 공유
JYP, 일본인 걸그룹도 준비

SM도 동남아 현지 아이돌 육성

우회 수출로 장벽 넘어라
K팝·한류란 이름에 얽매이면
한한령·혐한 등 문화장벽 부딪혀
지난 9월 데뷔한 중국 아이돌그룹 ‘보이스토리’에는 국내 JYP엔터테인먼트 제작진의 땀과 정성이 녹아 있다. 직접 중국 곳곳을 돌며 발굴한 멤버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음악과 안무를 가르쳤다. 멤버 6명의 평균 나이는 13세. 중국 최대 온라인 뮤직플랫폼 QQ뮤직은 6부작 예능프로그램 ‘보이스토리 슈퍼 데뷔’를 내보내고 있다. JYP의 파트너이자 보이스토리 대주주 격인 텐센트의 음악자회사 QQ뮤직이 전액 투자, 제작과 배급을 맡았다. 여름방학을 보내는 보이스토리의 일상, 2년여 연습생활 과정, 정식 데뷔를 준비하는 모습 등을 담았다.

FNC엔터테인먼트와 중국 쑤닝유니버설이 함께 키워낸 중국인 가수 리창정은 아이돌그룹이 아니라 보컬, 기타 연주, 작곡 등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다. 데뷔곡 ‘비너스’ 제작에 참여했을 정도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는 ‘NCT 중국팀’을 올해 데뷔시키는 한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현지 그룹을 키울 계획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는 K팝

보이스토리를 데뷔시킨 JYP의 정욱 대표는 “검증된 방식은 아니지만 새로운 방식이자 도전”이라고 했다. 아이돌그룹을 제작·운영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로 보면 된다는 얘기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이 한국인 멤버로 구성되고 한국어 가사로 노래부르는 데 비해 보이스토리는 그 타깃이 다르다는 뜻이다. 정 대표는 “중국이 한국에서 안 배우면 미국에서 콘텐츠 제작방식을 배울 것”이라며 “K팝은 특화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현지 기업과 함께 사업해 수익을 공유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토리가 중국에서 성과를 내면 동남아시아 등 세계 무대로 나가는 방안도 추진한다. 중국인은 세계에 퍼져 있고 경제적 파워도 강하기 때문에 중국 아이돌그룹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이스토리 멤버들의 평균 나이를 13세로 맞춘 것도 중국에 또래 아이돌그룹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TF보이즈’란 그룹이 대표적이다. 13세 즈음에는 춤과 노래의 습득 속도가 빨라 K팝의 핵심을 빠르게 익힐 수 있다. 중국에는 가수들의 전속계약 기간 규정이 없기 때문에 어린 멤버들을 키우면 회사가 오랜 기간 권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박진영 JYP 최고 창의성 책임자
현지 파트너사의 힘을 빌려 영업력과 수익성을 제고할 수도 있다. 보이스토리와 리창정 등은 중국 측 파트너사인 텐센트와 쑤닝유니버설의 막강한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방송과 공연 활동 등이 한결 편해지고 마케팅 역량도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FNC 관계자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런 파트너십이 해결 가능성을 넓혀준다”고 말했다.

◆“문화장벽 극복 위한 우회 진출 전략현지화 진출 방식은 문화장벽을 극복하는 우회 전략으로도 평가된다. K팝이 중국과 일본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건너뛸 수 있다는 얘기다. SM의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의 중국인 한경, 엑소의 중국인 타오·루한·크리스 등은 팀을 무단 이탈해 자국에서 독자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2016년 7월 중국 정부는 ‘한한령’(한류금지령)을 내려 한국 콘텐츠 수입과 연예인 활동을 원천 봉쇄했다. 일본에는 일부 극우세력의 ‘혐한’ 기류가 여전히 존재한다.

한한령이 내려진 뒤 한국 보이그룹 갓세븐의 홍콩 멤버 잭슨, 걸그룹 우주소녀의 중국 멤버 성소·미기·선의 등은 중국 내 방송과 광고에 출연하면서 활동했다. 그러나 한국인 멤버들은 중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또 트와이스 멤버 9명 중 일본인 3명(사나, 모모, 미나)은 현지에서 다른 국적 멤버들보다 큰 사랑을 받았다. JYP는 이런 점을 고려해 일본 파트너사와 함께 이르면 내년 말께 일본인 멤버로만 구성한 걸그룹을 선보일 계획이다.

◆“K팝, 한류라는 이름 집착해선 안 돼”‘K팝’과 ‘한류’란 용어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JYP 관계자는 “트와이스가 일본에서 일본어로 부르는 노래는 K팝인가, J팝(재팬팝)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며 “보이스토리가 중국어로 부르는 노래는 K팝인가, C팝(차이나팝)인가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류란 생산자 관점의 용어기 때문에 이름 붙여서 득될 게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강문 대중문화 평론가는 “문화장벽을 넘는 데는 특정 국가 색깔을 희석시키고 사정을 잘 아는 현지인과 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