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독' 신성일, 엄앵란 결혼 등 숱한 화제…영화 같았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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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 들롱과 비견3일 위독한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진 영화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성일)은 1960~70년대 최고의 미남 배우로 인기를 누린 원조 꽃미남 배우였다. 거칠고 반항적인 이미지의 '청춘의 심볼'로 꼽혔다.
엄앵란과 결혼, 어마어마한 화제 뿌려
의원 출마 등 정계 진출..뇌물수수 구속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 "영화인 자부심"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신성일은 데뷔 당시 소속사였던 신필름의 뉴 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을 담고 신성일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본명과 예명을 합친 강신성일로 개명하였다.1960년대 신성일의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 들롱과 비견됐을 정도였다. 신성일은 서양 남성처럼 선이 굵은 미남형으로 불리는 조각미남이라는 호칭도 이 당시 처음 대중화하였다. 최근 남성 연예인을 추앙하는 팬들의 모임을 일컫는 소위 '오빠부대' 팬덤을 일으킨 원조격으로 평가받는다.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후 '맨발의 청춘',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하며 국민 배우 반열에 올랐다. 특히 1960년대해 신성일이 거리에 나타나면 몰려드는 팬들을 막기 위해 기마 경찰 부대가 충돌해 시민을 통제해야했을 정도였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1964년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은 당대 최고 톱스타 배우의 결혼으로 메가톤급 화제를 뿌리는 뉴스였다. 신성일과 엄앵란은 '맨발의 청춘'을 비롯한 수편의 청춘 멜로 영화에 엄앵란과 주연을 맡아 큰 인기를 누렸다.TV 등 방송이 보급되기 이전 시대라 뉴스 정보전달이 늦던 시절이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대중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엄청났다. 당시 신성일-엄앵란 결혼식을 구경하려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혼란을 틈타 돈을 훔치려는 전문 소매치기단이 상경했다가 잡혀 뉴스가 되기도 했다.
방사선 치료 등 폐암 투병 중에도 지난해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며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지난 달 4일 열린 제23회 부산영화제 개막식 참석이 공식 석상에서 대중과 만난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신성일은 지난해 부산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신성일은 "나는 '딴따라'가 아닙니다. 딴따라는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딴따라는 옛날에 악극단이 공연할 때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따따따' 나팔을 불며 호객을 하던 것에서 나온 말이에요. 저는 종합예술 속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배우였다.정치인으로도 살았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돼 4년 간 의정활동을 펼쳤다. 17대 총선에선 당의 공천을 받지 못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려 하다 출마를 포기한 바 있다.
현재 신성일의 유족 측은 위중한 상태이지만 사망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신성일의 가족들은 이날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만일의 일을 대비, 빈소를 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성일의 조카인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날 연합뉴스를 통해 "오후 7시 30분께 신성일님이 별세하셨다"며 "지금 지역구에 있는데 내일 빈소로 찾아뵐 예정"이라고 전하면서, 이미 신성일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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