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터잡는 데 헛심 쓴 한국문학관

윤정현 문화부 기자 hit@hankyung.com
우여곡절 끝에 국립한국문학관 부지가 서울 은평구 북한산 자락에 있는 옛 기자촌(진관동) 터로 결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학관 부지 공모에 나선 지 만 2년5개월 만이다.

2016년 5월 시작된 부지 공모는 지방자치단체 간 유치 경쟁 과열을 이유로 한 달여 만에 절차를 중단했다. 이후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서울 용산 중앙박물관 인근으로 추진했으나 건축허가권을 가진 서울시가 반대해 무산되고 말았다.논란이 계속되고 일은 복잡해지자 문체부는 지난 5월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추진위원회(추진위)까지 구성했다. 골치 아픈 부지 결정을 추진위로 떠넘겨 버렸다.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 경기 파주 등도 후보지 명단에 올랐다고 하지만 추진위는 논의 과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2021년 개관을 목표로 한 한국문학관 건립 예산은 총 608억원이다. 부지 선정이 더 늦어지면 당장 내년부터 시작해야 할 사업에 예산 반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런 우려가 결단을 재촉했는지, 추진위는 서둘러 후보지를 은평구로 확정했다. 이견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치의 상징성과 접근성, 주변 환경 등을 두고 격론이 오갔다 한다.

한국문학관 설립 근거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대표 발의해 2016년 2월 제정된 문학진흥법이다. 시인 출신인 도 장관의 역점 사업인 셈이다. 물론 문학계의 숙원 사업이기도 하다.문학관의 수준과 위상은 위치나 시설로 따지지 않는다. 소장하고 있는 자료의 양과 질로 평가한다.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것 외에 문학 창작을 지원하고 문학 향유층을 늘리며 문학 교류를 넓혀 가는 것도 한국문학관이 할 일이다.

서울 장충동엔 한국현대문학관이, 인천엔 한국근대문학관이 있다. 한국문학관협회에 등록돼 있는 전국 각지 문학관만 이미 60곳이 넘는다. 문학계에서 “(국립한국문학관을) 어디에 세울지보다 무엇으로 채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문체부에서도 추진위에서도 무슨 자료를 어떻게 확보할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에 대해 격론이 오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터 잡는 데 진력하다 실질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