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00여 편 주연 '영원한 스타'…별들의 고향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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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별세…화려했던 영화인생한국 영화 사상 가장 밝게 빛난 ‘별’이 졌다. ‘국민배우’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30분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최고의 미남·반항적인 이미지
제임스 딘·알랭 들롱과 비견
1964년 '맨발의 청춘' 스타 등극
1974년 '별들의 고향' 대히트
엄앵란 "마지막까지 영화 얘기"
최불암 "반짝이는 별 사라졌다"
내일 영화인葬…장지는 영천
신성일 측 관계자는 이날 “고인이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 이후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신성일은 빼어난 외모와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사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긴 ‘영원한 스타’다.
본명이 강신영인 그는 1937년 서울에서 출생한 직후 대구로 이사해 도청 공무원으로 일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경북중과 경북고를 졸업했다. 가세가 기울면서 호떡장사 등으로 학비를 벌며 서울대 진학을 노렸지만 실패한 후 배우의 꿈을 꿨다. 1957년 신필름의 신인연기자 공모에서 264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상옥 감독에게 발탁됐다. 이후 신 감독이 ‘뉴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으로 지어준 신성일(申星一)이란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에 출마하며 본명과 예명을 합친 강신성일로 개명했다.1960년 신상옥 감독·김승호 주연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그는 ‘맨발의 청춘’(1964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숱한 히트작을 기록했다. 출연작 수도 다른 배우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등 500편이 넘는 다작을 남겼다.출세작은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이다. 엄앵란과 함께 주연한 신성일은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로 당대 최고 스타가 됐다. 두 사람은 약 10편의 ‘청춘 영화’에 함께 출연했고, 인기 절정기인 1964년 11월 결혼했다.
신성일의 전성기는 결혼 후에도 지속됐다.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위험한 청춘’(1966), ‘불타는 청춘’(1966)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1970년대에도 무력감과 좌절에 빠진 지식인을 연기한 ‘별들의 고향’(46만 명), 결혼에 실패한 교사 역을 해낸 ‘겨울여자’(58만 명) 등으로 역대 최다 관객기록을 경신했다. 신성일의 인기는 미국의 제임스 딘, 프랑스의 알랭 들롱과 비견됐다.신성일은 자신이 출연한 작품 중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를 최고의 영화로 꼽았다. 쫓기는 신세의 범죄자 역으로 특별휴가를 받은 모범수 문정숙과 애틋한 사랑을 그린 ‘만추’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 순수 영화 시나리오로서는 독보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부산에서 취재진과 만나 “나는 ‘딴따라’ 소리가 제일 싫다”며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종합예술 속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펴낸 책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에서 박찬욱 감독은 “이토록 한 사람에게 영화산업과 예술이 전적으로 의존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 영화사는 물론 한국 현대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평했다.정치에도 눈을 돌린 신성일은 11대(1981), 15대(1996) 총선에서 낙선한 끝에 2000년 16대 총선 때 대구 동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대 최고 스타답게 스캔들도 끊이지 않았다. 그는 2011년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에서 연극배우와 아나운서로 활동한 고 김영애(1944~1985)를 1970년대에 만나 사랑한 이야기를 공개, 파장을 일으켰다.
신성일의 외도로 엄앵란과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1975년부터 이미 별거했지만, 엄앵란은 이혼만큼은 하지 않았다. 엄앵란이 유방암 수술을 하게 됐을 때, 20여 년간 집을 나가 있던 신성일이 돌아와 엄앵란을 간호했다. 이번에는 엄앵란이 암 투병 중인 신성일을 위해 수천만원의 병원비를 부담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날 조문한 원로배우 최불암 씨는 “반짝이는 별이 사라졌다. 조금 더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빈소를 지키던 엄앵란 씨는 “남편은 ‘우리는 영화 동지다. 우리는 전진에 전진을 거듭해 끝까지 걸어야 한다’고 했다”며 “어떻게 죽어가면서도 영화 이야기를 하느냐는 생각에 넘어가는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고 말했다.유족으로는 부인 엄앵란 씨와 장남 석현, 장녀 경아, 차녀 수화씨가 있다. 6일 오전 10시 열리는 영결식은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과 후배 배우 안성기 씨가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아 영화인장으로 엄수된다.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