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ㅣ "이범수가 다 했다" 무뚝뚝한 가장의 처절한 가족애 '출국'

사진 / 영화 출국 스틸컷
가족을 위해서라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 수 있을까. 영화 '출국'은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기 위한 한 남자의 피 튀기는 사투를 담은 이야기다.

'출국'을 이끄는 건 배우 이범수다. 극의 8할은 이범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범수가 처절할 정도로 애틋한 부성애 연기를 선보였다. 전개가 다소 느슨해질 때마다, 집중력이 떨어질 때마다 이범수의 감정 연기가 극의 중심을 잡아줬다.이범수가 연기하는 영민은 '테이큰' 시리즈의 리암 니슨 같이 완벽한 무인(武人)형 아버지는 아니다. 전형적인 80년대 아버지상이다. 평소엔 무뚝뚝하지만 가족을 위해선 어떤 희생도 감내하는 인물이다.

그런 오영민의 고민은 두 딸을 행복하게 키우는 것이다. 오영민은 독일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고 남한에서 반국가 활동을 하면서 남한 입국을 금지 당했다. 자신의 업적에 대한 회한, 그리고 두 딸이 행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있던 와중에 "당신의 학문을 높이 평가한다"는 북한 공작원의 꼬임에 빠져 북으로 가는 선택을 하게 됐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 이유도 가족을 위해서였다. 북한에서도 학자로 남길 바랐지만, 영민은 북에 건너가자마자 공작원 교육을 받았다.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탈출을 감행하지만 예상치 못한 어린 딸의 행동으로 가족은 헤어지게 된다. 그때부터 영민의 '가족 구출 대작전'이 펼쳐진다. 이범수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인 오영민에 대해 "자상함과 책임감,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은 그 당시의 평범한 아버지"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 가정의 가장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인간 본연의 고뇌와 아버지로서의 사명감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휴머니즘 이외에 느와르적 어두움도 이 영화를 지배하는 심상이다. 극중에선 각국 정보기관들이 총출동한다. 남한의 안기부, 북한의 통일전선부 뿐 아니라 CIA 독일지부도 나온다.

세 정보기관은 영민과 그의 가족을 이용해 각국의 이익을 얻으려 시도한다. '사마귀 뒤 참새' 우화를 연상케 한다. 사마귀가 정원 나뭇가지에 앉아 울고 있는 매미를 잡아먹으려 노리고, 그 뒤에 참새가 입맛을 다신다. 그 위에서 사람이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이 영민을 중심으로 얽히고 설킨 공작을 지켜보는 것도 영화의 또다른 관전 포인트다.이범수 외에 박주미, 박혁권, 이종혁, 연우진 등의 배우들도 자신의 몫을 해내며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이범수와 박혁권의 베를린 광장 공중전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꼽을만 하다. 두 배우의 속도감 있는 대사 주고받기가 105분 러닝타임 동안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광장이라는 거대한 공간 속 영민을 몰래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을 담은 촬영기법과 심장 소리를 구현한 음악이 효과를 더했다.

15세 이상 관람과. 14일 개봉.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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