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아동수당 안 받겠다는데 주겠다는 여야

김일규 경제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
보건복지부 아동수당 담당라인은 9~10월 누적 아동수당 신청 결과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대상 아동 가운데 10만5000명가량이 아예 신청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 대상 아동(246만9642명) 중 신청 아동은 236만4924명, 신청률은 95.8%였다. 아동수당은 만 6세 미만 아동이 있는 가구 중 소득·재산 상위 10%를 뺀 나머지 가구에 9월부터 아동 1인당 월 10만원씩 주는 사업이다.

‘정부가 월 10만원씩 주겠다’는데도 10만5000명이나 신청하지 않은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소득·재산 정보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게 복지부 내부 분석이다. 아동수당을 신청할 경우 모든 소득·재산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데, 부자들은 그러다 세금만 더 내야 할 가능성이 있으니 차라리 아동수당을 안 받고 말겠다는 가구가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이는 지역별 신청률에서 엿볼 수 있다. 서울 지역 신청률이 90.8%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으며, 서울 내에선 강남구 신청률이 80% 남짓으로 제일 저조했다.

여야는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년부터 소득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대상 가구에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에 사실상 합의했다. ‘아동수당을 안 받겠다’는 10만5000명에게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주겠다는 얘기다. ‘부자들이 월 10만원 더 받는다고 애를 낳겠냐’며 소득·재산 상위 10%는 제외하기로 한 지난해 합의를 1년 만에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이번 합의는 사실상 야당이 기존 ‘선별 복지’ 방침을 접은 데 따른 것이다.

아동수당법은 그 도입 목적을 ‘아동 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 경감’에 두고 있다. 상당수 청년층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 보육료 지원과의 중복에도 불구하고 일부 계층에 한해 아동수당 지급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소득·재산 상위 10% 가구의 경제적 부담까지 줄여줘야 하느냐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아동수당 전면 지급은 사실상 표 계산에 따른 ‘무차별 현금 살포’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뒤이을 정부 재정 부담은 결국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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