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슬픈 지리산 반달곰

오형규 논설위원
야생동물 천국인 옐로스톤, 그랜드티턴 등 미국 서부 국립공원에는 쓰레기통마다 자물쇠가 달려 있다. 잠그지 않으면 밤에 곰이 난장판을 만든다. 통나무집에 묵을 때도 음식물을 밖에 뒀다간 곰을 불러들이기 십상이다. 잡식성인 곰은 사람이 먹는 음식은 거의 다 먹는다.

우리나라에서야 그럴 정도는 아니지만,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 개체수가 늘면서 곰과 사람의 조우도 점점 늘고 있다. 반달곰이 대피소에 출몰해 잔반통과 배낭을 뒤지고 침낭을 물어뜯은 사건도 있었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곰을 만났을 때 행동요령을 등산객들에게 안내하고, 인근 지자체들과 반달곰 공존협의체를 구성해 안전한 정착에 골몰하고 있다.반달곰은 북한 고산지대에 사는 불곰보다 크기가 작고, 가슴에 흰 무늬가 있어 얼핏 순해 보인다. 주로 도토리 등 열매·씨앗을 먹어 곰과(科)에서 판다, 안경곰 다음으로 채식비중이 높다. 쥐, 새, 물고기, 곤충 등도 잡아먹는다. 그러나 성체의 몸길이가 130~190㎝, 몸무게가 보통 100~150㎏이고 수컷은 최대 200㎏에 달한다. 엄연히 큰곰(아시아 흑곰)의 일종이어서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한반도 전역에 서식하던 반달곰은 일제 때 ‘해수구제(害獸驅除) 사업’과 밀렵, 6·25전쟁으로 절멸 위기에 처했다. 1982년 천연기념물(329호)로 지정되고, 2012년부턴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로 보호받고 있다. 2000년 지리산에서 야생 반달곰 5마리가 발견됐지만 종족을 유지하기에 숫자가 너무 적어 2004년부터 자연 방사 등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지리산에는 방사된 반달곰과 그 새끼가 존속에 필요한 최저선(50마리)을 웃돈다.

반달곰은 천적인 호랑이가 1920년대 멸종된 이후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 하지만 야생성이 없으면 홀로 살 수 없다. 더구나 인간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는 데 비례해 야생 곰이 살 공간은 좁아지고 있다. 올무와 덫에 걸려 폐사한 사례도 적지 않다. 등산객들이 던져준 음식에 익숙해져 등산로 주변을 맴돌고, 심지어 충치치료를 받은 곰도 있었다. 인근 민가의 밭과 벌통을 쑥밭으로 만들기도 한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은 점점 어려운 숙제다.최근 국립공원관리공단 종(種)복원기술원이 지리산에서 등산객들로부터 음식을 받아먹던 반달곰(고유번호 ‘RM(Russia Male)-62’)을 전남 구례에서 포획했다고 한다. 작년 5월 러시아에서 발견된 뒤 국내로 들여와 1년 전 지리산에 방사된 새끼 반달곰이다.

하지만 어미가 키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배우는 사냥 학습과정이 생략돼 재방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고기를 먹을 줄만 알았지, 고기 잡는 법은 몰랐던 셈이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자유를 얻을 수 없다.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