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모빌리티 승부수…'동남아 우버' 그랩에 3100억 투자

현대·기아차, 외부 투자 중 역대 최대규모

"그랩은 동남아 공략 파트너"
현대차 2000억, 기아차 850억…작년 말 280억 이어 또 투자
전기차 빌려 차량 호출 서비스…싱가포르서 시범사업 계획

정의선 부회장의 큰 그림
호주·인도 車공유업체 잇단 투자…"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목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오른쪽)이 지난 6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블룸버그 뉴이코노미 포럼’에서 앤서니 탄 그랩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블룸버그 제공
현대·기아자동차가 동남아시아 최대 차량호출 업체인 그랩에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를 투자한다. 역대 최대 규모의 외부 투자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말부터 모빌리티(이동수단) 관련 기술을 가진 세계 각국의 혁신기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제조업을 넘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투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랩에 역대 최대 규모 투자현대·기아차는 그랩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7일 발표했다. 현대차 1억7500만달러, 기아차 7500만달러 등이다. 지난해 12월 현대차가 투자한 2500만달러(약 280억원)를 합치면 그랩에 대한 현대·기아차의 총 투자액은 2억7500만달러(약 3100억원)에 달한다. 현대·기아차가 외부 업체에 투자한 금액 중 역대 최대치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의 성장 가능성과 전략적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그랩과 함께 현대·기아차의 전기자동차 모델을 활용한 신규 모빌리티 사업을 추진한다. 3사는 협력의 첫 단계로 그랩 드라이버가 현대·기아차의 전기차를 빌려 차량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범 사업을 싱가포르에서 시작한다. 사업성을 검토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국으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동남아의 전기차 수요는 내년 2400여 대 수준에서 2025년 34만 대까지 커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현대·기아차와 그랩은 모빌리티 서비스에 최적화된 전기차 개발도 함께하기로 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충전 인프라 설치 및 전기차 배터리 업체를 선정하는 데도 힘을 모은다. 지영조 현대·기아차 전략기술본부장(부사장)은 “세계에서 성장이 가장 빠른 지역 중 하나인 동남아는 전기차의 신흥 허브가 될 것”이라며 “그랩은 동남아 시장에서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고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최고의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제조업 넘어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말부터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글로벌 혁신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그랩에 대한 1차 투자를 시작으로 호주와 인도의 차량공유 업체 카 넥스트도어와 레브에 투자했다. 한국의 단거리 배달 서비스업체 메쉬코리아와 중국의 이륜차 배터리 공유업체 임모터 등 단거리 물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도 협업을 약속했다. 지난 9월에는 미국의 모빌리티 서비스 전문업체 미고에 투자했다.

현대·기아차가 모빌리티 사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낙점하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벌이는 데는 정 부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현대차의 3대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발표하고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그는 지난 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 포럼 행사장에서 앤서니 탄 그랩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앞으로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제조업체를 넘어 모빌리티 서비스업체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혁신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