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김, 200만 한인 恨 풀었다…네 아이 키우던 평범한 주부의 인생 역전

한국계 여성 최초 美 하원의원 탄생

남편 가교로 정치입문…20여년 의원 보좌관 일하며 잔뼈
인천 출신 괌 거쳐 美 이주…한때 의류사업하기도
영 김 /사진=연합뉴스
200만에 달하는 미국 내 한인 사회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20년 만에 한국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한인 1.5세인 공화당 영 김(56·한국명 김영옥) 당선인이다. 1998년 김창준 전 의원 이후 처음이고, 한인 여성으로는 최초다.

예비선거 이후 다섯 달의 접전 끝에 승리의 기쁨을 쟁취하게 된 영 김은 지지자, 한인 교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영 김은 "코리안 커뮤니티에서 성원해주신 것을 감사드린다"며 "저를 주류 사회에 시집보낸 것으로 항상 생각해 달라"면서 한미 관계의 가교 역할을 약속했다.

인천에서 태어난 영 김은 서울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뒤 13세 때인 1975년 가족과 함께 미국령 괌으로 건너가 중고교를 다녔다.

성인이 되면서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 입학하면서 미국으로 이주, 졸업 후 금융기관에서 재무분석가로 일했다. 이후 스포츠 의류업체에서 경험을 쌓고, 숙녀복 브랜드로 발을 넓혀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당시 매장에 직접 쇼룸을 만들고 어깨 너머로 디자인도 배웠다고 한다.

네 아이를 키우며 주부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영 김은 남편 찰스를 통해 정계에 첫 발을 디뎠다.

오렌지카운티 비영리기구에서 일한 남편은 한미위원회를 만들고 친한파 에드 로이스 의원과 자주 식사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어느 날 로이스 의원이 남편을 통해 영 김에게 보좌관 자리를 제의했다. 남편이 적극 천거했고 사업가 출신의 주부였던 영 김은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주 상원의원이던 로이스가 연방 하원의원이 되면서 이후 영 김은 21년이나 그를 보좌했다. 워싱턴DC에서는 한미의원연맹 일을 도우면서 한국 정계에도 인맥을 넓혔다.

라디오서울 등에서 방송일도 하면서 캘리포니아 한인사회에도 얼굴을 알렸다.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정치에 도전한 건 2014년. 캘리포니아 주 의회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 현역 샤론 쿼크 실바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주 의회에 진출한다.
20년 만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 당선 확실시 된 영김 후보 /사진 = 연합뉴스
코리언 아메리칸 여성으로 공화당 출신의 주 의원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이었다. 그러나 2년 뒤 리턴매치에서는 실바에게 석패했다.

영 김은 이후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집행관) 선거를 준비했다. 2017년만해도 모든 게 카운티 슈퍼바이저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로이스가 전격 은퇴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바통을 이어받아 연방 하원으로 진로를 바꿨다. 지난 6월 정글 프라이머리로 불리는 예비선거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해 본선에 올랐다.

영 김의 정책은 기본적으로는 공화당 주류와 궤를 같이한다. 감세 정책과 오바마케어 폐지, 성소수자(LGBT) 관련 법안에 대한 입장이 그렇다.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복잡하다. 스스로 자랑스러운 이민자임을 자처하는 그는 불법체류 이민 청년들을 구제하는 다카(DACA)에는 찬성한다.트럼프식 무관용 정책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또 캘리포니아의 피난처 도시법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