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으로 누리는 '소확행'…청춘, 설레는 '전통시장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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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데이트 코스 찾는 젊은층에 인기2년째 연애 중인 대학생 박희성 씨는 주말마다 데이트 코스를 짜느라 바쁘다. 강남, 홍익대 앞, 건국대 앞, 가로수길, 이태원 등 유명하다는 데는 이미 다녀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레스토랑, 카페도 이미 돌았다. 대개 비슷한 모습이어서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광장시장, 저렴한 가격의 명물 빈대떡·육회
통인시장, 돈 대신 엽전으로 먹거리 사먹는 재미
관광객에도 인기
그런 박씨가 눈을 돌린 곳은 전통시장이었다. 얼마 전부터 여자친구와 전통시장 탐험에 나선 것이다. 박씨는 “노인들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며 “강남 레스토랑보다 더 맛있고, 신사동 카페보다 더 정감 있는 시장이 도심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서울에서 뜨고 있는 대표 전통시장 두 곳을 찾아봤다.먹거리의 ‘메카’ 광장시장광장시장이 생긴 것은 1905년이다. 100여 년 전 이곳은 포목(布木: 배와 무명을 이르는 말로 의류 원단)을 거래하던 시장이었다. 시장은 점차 커져 식당 등 각종 먹거리도 팔게 됐다.
지금의 광장시장은 먹거리로 더 유명하다. 상인들의 끼니를 책임지던 시장 안 ‘먹자골목’이 지금은 맛집으로 떠올랐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소개되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골목길 좌판 사이를 가득 채운 외국인 관광객들은 테이블 위에 높게 쌓인 순대와 어묵 등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사진을 찍기 바쁘다. 상인들도 중국어와 일본어로 지나가는 관광객을 불러 세운다.광장시장에서의 식사는 편하지 않다. 레스토랑에서의 식사처럼 안락함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정감이 넘치고 따뜻한 맛이 있다. 레스토랑엔 없는 것이다. 지금처럼 쌀쌀해진 날씨엔 그 맛이 배가된다.
짧아진 해가 지기 시작한다. 기름에 튀겨지는 빈대떡 앞에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를 나눈다. 주황색 불빛 아래로 김이 피어오르는 떡볶이와 어묵을 친구와 먹으며 웃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런 풍경은 또 다른 사람들을 부른다. 시장으로 데이트를 다닌다는 20대 여성은 “뻔한 데이트 코스보다 시장 안에서 남자친구와 붙어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 게 더 친근감이 있다”고 했다.
지갑이 얇은 이들에게 시장은 넉넉함을 준다. 광장시장의 명물인 녹두빈대떡은 한 장에 4000~5000원. 마약김밥 떡볶이 순대 등 시장에서 인기 있는 메뉴도 대개 1인분에 5000원을 넘지 않는다. 두 명이 배불리 먹는 데 1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대학생과 젊은 연인들의 발길이 많아진 또 다른 이유다. 반찬이나 과자를 사면 상인들은 요구르트나 귤을 덤으로 준다.이달 2일부터 18일까지는 광장시장 옆 청계천에서 ‘서울 빛초롱축제’가 열린다. 등불로 수놓아진 청계천을 따라 걸은 뒤 광장시장에 들르면 또 다른 데이트 코스가 만들어진다.돈 대신 ‘엽전’ 내는 통인시장
‘꿀호떡 엽전 2냥, 씨앗호떡 엽전 2냥.’ 조선시대가 아니다. 지금 통인시장 호떡가게의 메뉴판 내용이다. 한 젊은 커플이 조선시대 화폐처럼 생긴 ‘엽전’을 4개 건네자 상인은 꿀호떡 두 개를 준다. 종로구 통인시장에선 한국은행이 적힌 지폐가 아니라 엽전이 돈으로 쓰인다.통인시장 중앙에 자리잡은 엽전 판매처에서 환전하면 된다. 엽전 한 개에 500원의 가치다. 엽전은 통인시장의 명물이 됐다. 통인시장에서 엽전으로 도시락을 사던 대학생 김지원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엽전으로 시장에서 밥을 먹었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보고 남자친구와 함께 왔다”며 “백화점이나 마트, 편의점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라 재밌다”고 말했다.
통인시장은 페이스북 등 SNS도 운영한다. 이는 통인시장을 ‘핫’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이다. 한 방문객은 “페이스북에 통인시장 엽전이 추천 게시물로 뜨는 걸 보고 신기해서 왔다”며 “페이스북에서 통인시장은 대학생들에게 유명하다”고 했다.
통인시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에 조성됐다. 이 시장이 엽전을 도입한 것은 그로부터 71년 뒤인 2012년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시장은 완전히 바뀌었다. 시장에서 호떡집 ‘총각네’를 운영하는 최모씨는 “2012년 이전엔 젊은 사람들이 아예 없었다고 보면 된다”며 “엽전 도입 이후 전체 매출 가운데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보라/정의진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