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십고초려' 전원책 한달만에 '셀프 경질'…길 잃은 혁신

인적쇄신,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김병준 '정치력 한계' 노출 지적도
전원책 돌출 언행에 당내 불만 고조…'전대 연기론'이 결정적 이유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가 9일 결국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을 경질했다.지난달 11일 비대위가 전원책 변호사를 조강특위 위원으로 선임한 지 30일 만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삼고초려가 아니라 오고초려, 십고초려 중"이라며 전 변호사 영입에 공을 들이던 한국당이었다.

그러나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직접 데려온 전 변호사를 스스로 내친 꼴이 되면서 리더십에 심각한 상처가 난 것은 물론이고, 인적쇄신 등 갈 길 바쁜 당내 혁신 작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비대위가 이날 전 변호사를 경질한 표면적인 이유는 전당대회 일정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예정대로 내년 2월 말에 전당대회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전 변호사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맞서 왔다.

기저에는 인적쇄신의 강도를 둘러싼 이견이 깔렸다고 할 수 있다.김 위원장과 전 변호사 모두 인적쇄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김 위원장은 "무조건 사람을 자르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에, 전 변호사는 "인적쇄신 완료 기한은 정해놓을 수 없다"에 각각 방점을 찍어왔다.

결국 두 사람, 나아가 비대위와 조강특위의 갈등은 전당대회 일정을 촉매제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특히 전날 김용태 사무총장이 전 변호사 등 조강특위 외부위원들을 만나 전대 일정 등을 협의했지만 입장차가 분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무엇보다 비대위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오후 3시 조강특위 회의 결과를 보고 해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전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잃을 게 없다. 자르려면 자르라"고 말하면서 전격적으로 해촉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김 사무총장은 "전 변호사가 공개적으로 비대위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표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당내에 내년 2월 말 전대 개최에 대한 컨센서스가 형성된 상황에서 전 변호사의 '전대 연기론'을 묵과하는 경우 당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이번 주 초·재선 의원들을 잇달아 만나 "전대 연기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며 당내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당내에서는 전 변호사의 돌출적인 언행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전 변호사는 '전대 출마 불가 12인' 명단을 언급하고, "고인 물은 썩는다", "경제민주화 강령을 받아들이고 빨간색으로 당색을 바꿔 당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관련 끝장토론 요구" 등 튀는 발언을 쏟아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전 변호사가 월권을 하고 있다", "평론가인가, 조강특위 위원인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고조됐다.

전 변호사의 해촉 결정에 당내 '당연한 결과'라는 여론이 적지않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럼에도 한국당이 '십고초려'를 한 전 변호사를 '셀프 방출'하면서 당내 혁신 작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제대로 된 혁신을 하겠다고 어렵게 영입한 외부 인사가 정작 '혁신의 칼'을 빼 들자 내친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전 변호사 경질로 조강특위의 본래의 역할인 인적쇄신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 변호사는 해촉이 된 이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내년 2월 말 전당대회를 하려면 12월 15일까지 현역 의원을 잘라야 하는데 그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하다"며 "결국 한국당이 인적쇄신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에 향후 조강특위 활동 과정에서도 김 사무총장 등 내부 위원들과 외부 위원들의 힘겨루기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남은 3명의 외부 위원 모두 전 변호사가 영입한 인사들이다.

강성주·이진곤·전주혜 조강특위 위원은 일단 전 변호사와 동반 사퇴를 하지 않고 활동을 마무리하겠지만, 당 지도부 입맛에 맞는 인사로 전 변호사의 빈 자리를 채울 경우 '비토'한다는 입장이다.

이진곤 위원은 이날 조강특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책임지고 조강특위를 마무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면서 "최대한 활동 기한을 맞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조강특위 위원 추가 선임과 관련해 "당이 일방적으로 어떤 분을 보내서는 안 된다"며 "그것은 정말 큰 실수다. 그분을 모시기 위해 전 변호사를 밀어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강특위에 전례 없는 권한을 주겠다"며 전 변호사 영입에 각별한 공을 들인 김병준 위원장 역시 체면을 구겼다.

특히 김 위원장이 전 변호사를 둘러싼 논란을 해결한 방식을 놓고 외부 인사로서 정치력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2월 말까지 남은 4개월 동안 김 위원장의 혁신 작업이 상당 부분 동력을 잃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과 당원 동지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린다. 경위야 어찌 됐든 비대위원장인 제 부덕의 소치"라며 "당 혁신 작업에 동참해 주셨던 전 변호사께도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