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서 1차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정상 70여명 총출동

비 오는 궂은 날씨 속 전쟁의 참화와 세계평화 의미 되새겨
마크롱 "낡은 망령 되살아나…공포심 조장 말고 희망 건설하자"
푸틴, 이날도 정상 중 가장 늦게 도착…트럼프에 '엄지 척' 친밀함 과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종전 100주년 기념식이 11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일대에서 전 세계 70여 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됐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 파리 중심가의 개선문에서 기념식을 주재하고 수천만 명이 희생된 인류 최초 총력전의 의미와 평화에의 염원을 되새겼다.

마크롱 대통령은 개선문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한 뒤 연설에서 굳은 표정으로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서로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지 말고 희망을 건설해나가자"고 당부했다.

그는 "배타적 민족주의 애국심의 정반대"라면서 "낡은 망령들이 혼돈과 죽음의 씨앗을 뿌리려고 되살아나고 있다"면서 "역사는 때로는 조상들이 피로 맺은 평화의 유산을 뒤엎고 비극적인 패턴을 반복하려고 한다"며 경각심을 촉구했다.마크롱은 이어 "우리는 지구온난화, 환경 파괴, 빈곤, 기아, 질병, 불평등, 무지 등 세계에 닥친 위협들을 함께 물리치자. 퇴행과 폭력, 지배에 맞서 싸우자"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 주요국 정상들이 말 그대로 '총출동'했다.

1차대전 당시 승전국이었던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은 물론, 패전국인 독일과 터키(옛 오스만튀르크) 정상들까지도 한데 모여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세계 평화를 염원했다.평소 외교 석상에 늦게 나타나기로 악명 높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이날도 초청된 70여 명의 지도자 중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행사장인 개선문에 다른 정상들보다 최소 30여 분가량 늦게 도착해 미리 도열해 있는 각국 정상들과 악수하며 느긋하게 입장했다.

푸틴은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면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각별히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이날 트럼프 부부가 탄 차량이 행사장으로 접근할 때 급진페미니스트 단체 페멘(Femen)의 여성 회원이 상의를 벗은 채 반라로 접근하다가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 여성의 상반신에는 트럼프를 겨냥해 '가짜 평화중재자'(fake peacemaker)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고 로이터 등 외신들이 전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다양한 문화적·인종적 배경의 고교생들이 모여 1차대전에 참전한 10대의 어린 병사들이 남긴 편지를 낭독해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아울러 프랑스 태생의 중국계 미국인 첼리스트 요요마와 러시아 지휘자가 지휘하는 유럽 청소년 오케스트라 등이 연주자로 나서 평화와 화합의 의미를 다졌다.

1차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은 영국, 호주, 인도, 뉴질랜드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열렸지만, 프랑스에서 가장 성대하게 열렸다.

프랑스는 1차대전 당시 영·불 연합군과 독일군과의 전격전이 벌어진 최대 격전지였고, 1차대전의 가장 큰 당사국이었다.

1918년의 휴전협정도 파리 인근의 콩피에뉴에서 조인됐다.

대량파괴무기가 총동원된 인류 첫 전격전이었던 1차 세계대전으로 총 1천만 명의 군인이 전사했고, 500만∼1천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프랑스 정부는 이날 기념식을 비롯해 주요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파리평화포럼의 경비를 위해 1만 명의 경찰력을 투입해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기념식에 앞서 지난 9일 미리 프랑스를 찾아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솜 지방의 격전지를 방문해 전몰장병들을 기린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런던에서 따로 열린 영국의 1차대전 종전 기념식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함께 참석했다.프랑스와 함께 1차대전의 주요 승전국이었던 영국에서는 이날 오전 11시를 기해 전몰장병과 시민들을 기리는 조종(弔鐘)이 전국의 성공회(영국국교회) 성당에서 일제히 울려 퍼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