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거 짝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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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한국 사회에는 독특한 습성이 있다. 명품을 살 재력이 있건 없건, 몸에 걸친 게 명품이냐고 물으면 당사자는 대개 ‘짝퉁’이라고 손사래부터 친다는 점이다. 유명인일수록 자진 ‘짝퉁 인증’ 사례가 적지 않다.
이번에는 장관급 인사가 진품이면 수천만원에서 1억원에 이르는 명품시계로 뒷말이 무성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주 국회에 나올 때 스위스 명품시계 바쉐론콘스탄틴을 찬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그는 “2007년쯤 캄보디아 출장 때 길거리에서 30달러 주고 산 짝퉁”이라며 명품이 아님을 애써 ‘해명’했다. 사실 그런 초고가 진품 시계를 사서 들여올 만큼 간이 큰 공직자는 없을 것이다.여기서 세 번 놀라게 된다. 장관급 인사의 짝퉁 고백이 그렇고, 명품시계 차는 것을 ‘흠결’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그렇다. 명품 브랜드를 즉시 감별해내는 우리 사회의 ‘매의 눈’도 신기하다. 그만큼 명품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한국은 손꼽히는 명품 소비대국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명품(가방, 의류, 주얼리, 시계, 뷰티 등) 소비액은 14조원대로 세계 8위였다. 명품가방은 3조7000억원으로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네 번째다. 명품 종주국 프랑스보다 많다. 명품의류도 6조5000억원대로 6위다. 1인당 소비액으론 일본보다 많다.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남다른데도 유명인이 명품을 걸치면 구설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 명품 혼수는 물론 해외관광지에서 짝퉁시장에 들르는 게 보통인데도 그렇다. 명품도 ‘내가 사면 로맨스, 남이 사면 불륜’의 내로남불이 작용하는 것일까.그보다는 ‘공직자와 명품’이란 조합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서일 것이다. 짝퉁 구매도 명품 선호의 또 다른 단면이기에 부적절하긴 마찬가지다. 본인 삶과는 달리 ‘서민 코스프레’ 하는 유명인사들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지적처럼 현대인의 명품 소비는 ‘타인의 욕망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가치에 비해 교환가치가 턱없이 높은 명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의 ‘사회적 차이화’를 추구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금융위원장의 짝퉁시계 소동은 명품을 보는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애증(愛憎)심리를 자극한 셈이다.
이렇게 명품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아쉬움이 커진다. 왜 ‘한국의 명품’을 못 키우냐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선 ‘명품=해외 유명 브랜드’라는 인식이 고착화돼 있다. 우리 전통과 장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서일까, 서구문물에 대한 동경이 뿌리 깊어서일까. 한국산 TV, 화장품은 해외에서 거의 명품 대접을 받는다. 외국인들은 한국을 배우고 경험하려고 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됐다.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