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유동성 잔치 끝난 세계 부동산 시장…한국은?

저금리 시대 10년 만에 폐막 …부동산 시장 조정기 돌입
"한국에 영향 적을 것…국내 기준금리 인상이 변수"
그간 활황을 누린 세계 주요 국가 부동산 시장이 속속 조정기에 들어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추진한 저금리 시대가 10년 만에 저물면서부터다. 지난달 JP모건체이스가 집계하는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평균 1%를 넘어섰다. 이른바 ‘제로 금리’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다. 그간 세계 부동산 시장을 떠받쳐온 유동성이 감소하면서 부동산 투자 수요가 한풀 꺾였다. 일부 국가에선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정부가 대출규제와 세금제도 등을 강화하면서 주택 시장이 빠르게 식고 있다.
◆미국 주요지역 하락세 전환올들어서만 기준금리를 세 차례 올린 미국은 주요 도시 곳곳에서 부동산 시장 하락세가 뚜렷하다. 거래량과 주택가격지수 등 각종 부문에서 최근 수년내 최저 기록이 속출하고 있다.
시장엔 가격을 내린 매물이 속속 나오고 있다. 부동산중개·정보업체 레드핀은 지난 8월 둘째주부터 9월 둘째주까지 올라온 매물 중 26.6%가 가격을 1% 이상 50% 이하로 인하해 나왔다고 분석했다. 레드핀이 통계 분석을 시작한 2010년 이래 가장 높은 비율이다. 매물 가격 인하는 시애틀(지역 전체 매물의 37.1%), 라스베가스(28.1%), 애틀란타(27.0%), 산호세(25.7%) 등 곳곳에서 나타났다. 미국 주요 20개 도시의 주택가격을 나타내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미국주택가격지수의 상승률은 5개월 연속 둔화했다. 가장 최근 수치인 지난 8월 지수(205.81)는 2016년 이래 가장 낮은 기록을 냈다.

이는 기준금리 상승과 함께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 등이 확 오른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 중앙은행(fed)는 지난 3월부터 기준금리를 세 차례 올렸다. 올초 1.5%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이달 기준 2.25%로 올랐다. 지난 9일 미 중앙은행은 다음달 중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을 시사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었다. 패니메이와 함께 미 양대 국책 주택담보대출 기업인 프레디맥은 지난 8일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금리가 4.94%로 2011년 2월 이후 최고치라고 밝혔다. 지난주(4.83%)보다 0.1% 이상 올랐고 1년 전(3.94%)보다는 1% 더 높다. 샘 케이터 프레디맥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주택 구매 여력이 떨어진 주택담보대출 수요자들이 거래에 선뜻 나서지 않으면서 주택시장 거래량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미 의회를 통과한 세금개정안도 주택 수요가 줄어든 요인이다. 주택담보대출 이자 공제율이 줄었고 공제 적용 기준은 까다로워졌다. 미 의회에 따르면 올해 주택담보대출 공제로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가구는 작년 대비 절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홍콩, 금리 급등에 계약 취소 속출

홍콩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홍콩 기존주택 가격지수는 지난 8월 29개월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선 이래 계속 낮아지고 있다. 지난 8월(394.5)엔 전월보다 0.08% 떨어졌고 지난 9월(388.8)엔 1.44% 추락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9월 약 40제곱 이하 소형 주택 가격은 2.5%가량 하락했다. 매수세가 빠르게 잦아들자 가격을 확 낮춰서라도 주택 매도에 나서는 이들이 늘어서다. 가오룽완 지역의 전용 26㎡ 아파트는 최근 433만 홍콩달러(약 6억2500만원)에 거래됐다. 일주일 전 거래가보다 8.8% 떨어졌고 1년 전보다는 16% 낮은 가격이다. 상슈지역의 전용 103㎡ 아파트는 지난 9월 원래 가격의 20.4%나 인하된 955만 홍콩달러(약 13억7700만원)에 손바뀜됐다. 홍콩 고급 주택가인 해피밸리의 전용 44㎡ 주택은 당초 집주인인 제시한 가격보다 80만 홍콩달러(약 1억1500만원) 더 낮은 1200만 홍콩달러(약 17억3000만원)에 팔렸다. 할인 거래 사례가 흔해지면서 연내 홍콩 주택 가격 하락률이 더 커질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홍콩 주택 거래량은 기준금리가 2.25%로 오른 지난 6월부터 매달 하락폭이 커지며 급락하고 있다. 홍콩 공시지가발표국(RVD)에 따르면 지난 9월 홍콩에서 신고된 주택 거래는 3500건을 기록했다. 총 4822건 거래가 신고된 전월보다 1300건 넘게 감소했다. 작년 9월(5629건)보다는 37.8% 떨어졌고 2016년 동월 거래량(7826건)의 반토막 넘게 줄어든 수치다.

대출금리가 단기간 급등하면서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한 이들이 주택을 내놓거나 매입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SCMP에 따르면 올해 계약금 몰수를 감수하고 부동산 개발업체와 체결한 주택 매입계약을 취소하는 이들이 늘었다. 지난해엔 계약금 몰수 건수가 9건에 그쳤지만 올해 들어선 36건에 달한다. 일부의 경우 몰수된 계약금이 200만 홍콩달러(약 2억8800만원)에 이른다.

◆캐나다, ‘유동성 잡기’ 정책에 주택시장 주춤캐나다부동산협회(CREA)는 지난 9월 기준 총주택가격지수(HPI)가 3개월 전보다 1.1% 하락했다고 발표했다.캐나다 주택시장은 당분간 하락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CREA는 금리 인상 등으로 주택 수요자의 구매력이 낮아지고 있어 내년 캐나다 부동산 거래량은 9.8%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택평균 가격은 초호화 부동산가격을 중심으로 하락해 올해 말까지 2.8%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캐나다는 그간 급등한 밴쿠버, 토론토 등 주요 도시의 주택시장 열기가 식어들고 있다. 정부의 전방위적 부동산 규제와 금리 인상 등의 영향이다.

캐나다는 올해 초부터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각종 부동산 시장 억제책을 펼치고 있다. 그간 시장에 풀린 유동성과 외국인 투자 등으로 급격히 오른 집값을 잡기 위해서다. 캐나다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으로 꼽히는 밴쿠버 지역 일대는 중국 등 외국인 투자 수요가 몰려 2016년 한 해에만 집값이 전년대비 30% 폭등했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올초 주택담보대출 신청자의 대출상환 능력을 검증하는 ‘스트레스 테스트’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2월엔 외국인을 대상으로 특별 부동산 취득세를 20%로 올리는 등 투기억제 대책을 강화했다. 지난해 7월엔 실거주자가 아닌 외국인 투자자를 겨냥해 밴쿠버 일대에 공실세를 도입했다. 다주택자가 보유한 빈 집에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기존 총부채상환비율(DTI)보다 더 엄격한 대출규제도 도입했다. 국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과 유사한 GDS, TDS 등이다.

◆호주, '집값 거품' 조정 시작

호주 통계청에 따르면 8개 대도시(시드니, 멜버른, 브리스번, 애들레이드, 퍼스, 호바트, 다윈, 캔버라) 주택 가격은 2016년 10~12월 동안 4.1% 치솟았다. 지난해 1~3월엔 2.2%, 4~6월엔 1.9% 뛰었다.
하지만 올들어 주택시장 시황이 반전됐다. 지난 4~6월 8개 대도시 주택 가격은 0.7% 빠졌다. 핵심 시장인 시드니와 멜버른 집값 하락세는 더욱 가파르다. 두 도시의 주택가액을 합치면 호주 주택시장의 약 60%를 차지한다. 부동산정보업체 코어로직에 따르면 지난달 시드니 주택 가격은 전월대비 0.7%, 지난해 대비 7.4% 낮아졌다. 1990년 2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멜버른 집값은 전월대비 0.7%, 작년 대비 4.7% 떨어졌다. 주택 매매가 중앙 구간에 해당하는 중위가격은 올들어 시드니에서 6%, 멜버른은 4.8% 깎였다. 신축 주택은 분양가 이하에 팔리고 있다. 코어로직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시드니 신축 아파트의 30%, 멜버른 신축 아파트의 28%가 가격이 분양가 아래로 떨어졌다.

정부가 대출을 확 조인 것이 주효했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 하락세가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호주 자산관리 업체인 맥쿼리그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시드니와 멜버른 집값이 작년 9월께 최고치 대비 15~20% 가량 떨어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호주 전국적으로는 10% 하락세를 점쳤다. 맥쿼리 증권 관계자는 “거의 40년 만의 최대 하락폭이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고점 대비 집값이 20% 떨어지더라도 2015년 4~5월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정도에 그친다”고 덧붙였다.

◆국내 주택시장 영향은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선진국 부동산시장과 한국 부동산시장의 상관관계는 낮다고 보고 있다. 수급여건 경제상황 등이 제각각인 까닭이다. 다만 선진국처럼 과도한 유동성을 조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내년 부동산시장이 올해 같은 급등세를 나타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장기가 이어진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자금이 서울 집값을 올린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작년 ‘8·2 부동산대책’과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지난 9월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 등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강화하는 등 대출을 조였다.

부동산 업계에선 국내 기준금리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올해 세 차례나 금리를 올린 미국은 다음달에도 한 차례 금리를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정다이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아직 원화 약세 강도가 세지 않고, 국내 시장이 기존 한미간 기준금리 차이 폭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은 된다”며 “하지만 금리차 역전 폭이 더 심화되면 외국인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원화 강세 압력이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장금리가 오르고, 대출금리 기준이 되는 금융채나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가 따라 오른다. 코픽스가 오르면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주택담보대출 등 각종 대출금리도 함께 올라가게 된다. 통상 대출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늘어 부동산 투자 수요가 줄어든다. 국내 기준금리 인상이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기준금리 상승폭이 0.5%포인트 이하라면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가구가 확 늘진 않는다”며 “국내 부동산 시장은 지역별 입지와 수요·공급 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