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000만원 수준 車공장?…광주형 아닌 '울산형 일자리'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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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꺼지는 한국 車산업근로자 연봉 3500만원 수준의 완성차 공장을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기존 취지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광주광역시와 지역 노동계가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세워 현대자동차를 압박하면서다. 광주시와 지역 노동계가 제시한 안대로 협약이 체결되면 고임금·저효율에 짓눌린 기존 울산공장과 비슷한 수준의 공장이 하나 더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8) 취지 무색해진 광주형 일자리
市-지역 노동계, 적정임금 등 추상적 합의문 내놓고
현대차엔 성과급 지급·협력사 이익 공유 등 요구
5년 임단협 유예 조항 빠져…강성노조 출범 우려도
연봉 5000만원 車 공장 되나광주시와 광주 노동계는 지난 13일 밤 9시부터 12시까지 회의를 열고 광주형 일자리 추진 관련 합의를 도출했다고 14일 발표했다. 이들은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 4대 원칙을 담은 합의문을 마련했다. 광주 노동계는 이병훈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과 박남언 일자리경제실장 등 두 명으로 구성된 협상단에 향후 협상을 맡기기로 했다.
이날 공개된 합의문은 지금까지 현대차와 광주 노동계가 이견을 보인 현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협상추진단은 적정임금 실현에 매진하고, 적정임금은 최대한 일자리 창출 기회가 확장되도록 하는 수준에서 마련한다’ 등 추상적인 내용만 담았다. ‘특정 기업의 과도한 고임금화를 지양한다’ 등 임금 수준을 과도하게 높이는 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듯한 문구도 있다.
광주시 관계자들은 “광주 노동계가 협상을 광주시 협상단에 위임한 것 자체가 현대차와 보다 유연하게 협상하라는 취지”라며 “광주 노동계가 크게 양보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광주시는 이날 광주 노동계와 합의안을 발표하면서 “이제 현대차 결단만 남았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실제 광주시가 현대차에 제시한 협약안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 40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할 때 연봉 3500만~4000만원을 보장하고, 별도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과급과 초과근로수당을 더하면 연봉은 5000만원대에 달한다.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강조해 같은 지역의 완성차 공장(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과 임금 격차를 줄여 달라는 압박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아차 직원의 평균 연봉은 9300만원이다. 새로 만들어질 광주 완성차 공장과 주변 협력업체의 임금 격차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도 전달했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광주 완성차 공장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눠야 한다는 뜻”이라며 “최근 정부에서 추진하는 협력이익공유제와 비슷한 개념을 강요한 것”이라고 해석했다.당초 현대차와 광주시가 합의한 5년간 임금 및 단체협약 유예 조항도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5년간 노조가 아니라 노사협의회를 통해 각종 현안을 논의한다는 조항은 산별노조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조항으로 교체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광주 완성차 공장이 만들어지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노조가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지역 노동계에 휘둘린 광주시
현대차는 이런 요구에 대해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현대차와 광주시가 합의한 수준에서 벗어난 협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자동차업계는 광주시가 협약안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광주시가 지역 노동계에 끌려다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새 실험으로 여겨지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 자체를 망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대차와 광주시는 지난 6월 연봉 3000만원 수준의 완성차 공장을 설립하자고 뜻을 모으고 협약서를 체결할 계획이었지만, 지역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한국노총이 주력이 된 지역 노동계는 한동안 논의에 참여하지 않다가 지난달부터 협상에 참여했다. 이런 와중에 광주 노동계가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논의에서 빠지겠다”고 협박하자, 광주시가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지적이다.
광주시가 협약서 체결에 급급한 나머지 현대차가 수용할 수 없는 안을 제시하고 “현대차의 결단만 남았다”고 압박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광주시와 지역 노동계가 체결한 합의서는 논의 초기 제시됐던 전제에서 벗어난 최악의 합의서”라며 “대부분 기업들 입장에선 이사회에 올려봤자 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병욱/광주=임동률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