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 임금 자제" 호소 말고 제도 만드는 게 정부 할 일이다

홍장표 청와대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어제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줄여 협력업체 임금 인상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임금 격차 완화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과제”라며 “심각한 임금 격차를 줄이려면 노동자의 자발적인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한 말이다.

홍 위원장의 언급처럼 우리나라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중소기업 노동자 평균 임금(제조업 기준)은 대기업 노동자 평균의 62%에 불과했다. 일본과 독일이 업종에 따라 85~90%인 것과 비교해 격차가 너무 크다. 경제학자인 홍 위원장이 자유시장경제 대전제의 하나인 ‘사적계약 원칙’에 어긋나는 민간기업 임금 삭감까지 언급한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일 것이다.임금 격차는 소득 양극화의 고착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자진 삭감’이라는, 선의(善意)에 호소한 대목에 어리둥절해진다. 임금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역대 정부는 권력화된 소수 대기업·공기업 노조의 요구에 순응해 노사 법규를 손질해 왔다. 그 결과 전체 근로자의 10%도 안 되는 거대 사업장 소속 노조원들이 과보호받는 기형적 구조를 심화시켜 왔다.

전문가들은 너무 짧은 임금·단체협상 주기만 개선해도 임금격차 주범인 대형 사업장의 과도한 임금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노동법상 임금 협상은 1년, 단체협상은 2년이 유효기간이다. 매년 임금 협상이 벌어지고, 대규모 사업장의 파업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 3년, 미국은 4~5년마다 임금조건 등을 재협상한다.

법정임금의 기준인 최저임금 산정 방식 개선과 왜곡된 임금체제 개편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산정기준이 불명확한 데다 중소기업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린다면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물가상승률 등 객관적 지표를 인상 기준으로 삼도록 명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편법 임금 인상 통로로 활용되는 각종 수당을 정리하고, 일과 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일본의 직무급제와 독일의 숙련급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이런 제도적 보완은 정부만이 할 수 있다.